매장에 진열된 제품을 살피고 있는데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혹시 이런 예상치 못한 접촉이 쇼핑 경험이나 제품 선호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호주 퀸즐랜드 공과대의 브릿 마틴 교수 등은 이런 독특한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실제 매장을 관찰해보면 낯선 사람과 부딪힌 경험을 한 여성들이 서둘러 매장을 떠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적이 있었다. 연구팀이 실험을 해보니 하찮은 신체 접촉은 별 영향이 없을 것이란 일반적 통념을 깨는 참신한 결과가 나왔다. 낯선 사람과 팔을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의 가벼운 신체접촉만 있어도 둘러보고 있던 상품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특히 여성보다는 남성과의 우연한 신체 접촉이 선호도를 더 떨어뜨렸다. 유통 및 서비스 업체 경영자들과 매장 운영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이 연구 결과는 DBR 111호(8월 15일자)에 자세히 실려 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여자도 남자를, 남자도 남자를 더 싫어한다
마틴 교수 연구팀은 실험을 위해 영국 남부 한 도시 쇼핑몰의 가방 판매매장을 빌렸다. 매장 한가운데 신상품 가방을 진열해놓고 총 114명의 남녀 방문자에게 가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점수를 매겨달라고 요청했다. 0점은 불만족, 7점은 최고만족이었다.
방문자들이 가방을 보고 있을 때, 30대 초반의 남성 혹은 여성 연구원이 같은 물건을 보는 척하면서 그 사람의 등 위쪽을 팔로 살짝 스치고 지나가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체접촉이 있었던 경우와 없었던 경우 방문자들이 신상품 가방에 매긴 점수를 비교해보았다.
신체접촉이 일어나지 않은 방문객들이 가방에 매겨준 호감도 점수는 평균 4.88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스치고 지나갔을 때는 평균점수가 3.87로 떨어졌다. 남자가 스치고 지나갔을 때는 2.78로 급감했다. 민감한 신체 부위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붐비는 곳에서 자주 부딪힘을 경험하는 어깻죽지를 살짝 건드린 것만으로도 보고 있던 상품의 매력도가 거의 반 토막 나버린 셈이다. 또 지불 의향 가격과 쇼핑 시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즉, 낯선 사람과 접촉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신상품에 대해 더 낮은 가격을 지불하려 했고 쇼핑몰 체류 시간도 훨씬 짧았다. 서둘러 쇼핑을 끝내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매장 내에 머무는 시간과 구매량은 유의미한 관계가 있었다. 체류 시간이 짧으면 판매량이 줄어들 공산이 컸다.
마틴 교수는 이런 신체 접촉을 AIT(Accidental Interpersonal Touch·우연한 대인 접촉)라 이름 붙였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소비자들도 여성의 접촉보다 남성의 접촉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점이다. 여성의 경우 남성의 신체 접촉으로부터 도덕적 혐오나 성적 불쾌감을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은 성적 불쾌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남성의 접촉을 본능적으로 자신에 대한 지배욕구로 받아들여 위협적으로 느낀 것으로 추론됐다. 악수와 같은 상호 교환적 접촉은 친근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에 의해 일방적으로 일어나는 신체접촉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누군가에게 지배당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해석이다.
○ 동선 관리 통해 브랜드 충성도 높여라
이 연구결과는 유통점과 대형마트, 음식점, 레저 및 문화공간, 체험형 매장 등을 설계하거나 운영하는 관리자들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매장에서는 고객들이 낯선 사람과 최대한 부딪히지 않도록, 특히 낯선 남자와의 신체접촉이 일어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상품을 오랫동안 보면서 살까말까 심사숙고하는 제품일수록, 또 그런 고객일수록 매장 내 체류인원 수를 조절하거나 동선을 잘 배치해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한국은 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신체 접촉에 비교적 관대한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길 가다가도 자주 부딪히니 예사롭게 생각할 거야’라고 안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마트 안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물건을 진열하기 위해 통로의 간격을 줄이다 보면 고객들끼리 몸이 스치는 일이 많아져 제품 구매율이 떨어질 수 있다. 또 남성과 여성용 제품을 함께 판매하는 매장에서는 제품뿐 아니라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을 멀리 떨어뜨려 놓아 남성과 여성의 동선이 얽히지 않게 만드는 것도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다.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고객들의 매장 체험에 대한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고객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를 향상시키고 지불 의향 가격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11호(2012년 8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구독 문의 02-2020-0570
중국 ‘관시’ 오해와 진실
▼ MIT슬론 매니지먼트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A는 중국 본토에 진출하면서 인맥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 인사들과 ‘관시’라고 불리는 유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후원하고 호화로운 파티를 주최했다. 하지만 몇 년이 흘러도 비즈니스 성과는 제자리였다. 기대 이하의 결과를 받아든 경영진은 원인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관시를 만들기 위해 쏟아 부은 갖가지 노력들이 오히려 좋지 않은 평판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국 경영자들은 A기업을 비즈니스 파트너라기보다는 공짜로 유흥을 제공하는 대상쯤으로 생각했다. 설상가상으로 A가 내놓을 수 있는 매력적인 비즈니스 제안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A가 사업에 주력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A의 중국 진출은 실패했다. 중국에서 효과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점을 소개한다.
미얀마 정글 극복한 英 괴짜대령
▼ 전쟁과 경영
미얀마 정글은 가혹했다. 칼날 같은 풀과 나뭇잎은 군복도 찢었다. 원시림의 바닥은 수십만 년간 썩은 부식토와 유해가스 덩어리였다. 그 부식토에는 가죽 군화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비가 오면 부식토는 썩은 진흙탕이 됐다. 거머리와 흡혈파리, 모기가 우글거렸다. 이 정글에서 영국군과 일본군이 맞붙었다. 사기도 높고 정글 적응력도 좋았던 일본군에 비해 영국군은 병력, 훈련 등 모든 면에서 뒤처졌다. 이때 괴짜로 소문난 대령 한 명이 미얀마에 배치됐다. 윙게이트라는 이름의 이 대령은 병사들을 맨몸으로 정글에 내몰아 수백 마리의 모기에도 인내심을 기르도록 훈련시켰다. 고된 훈련에 실신자가 속출했지만 윙게이트는 중단하지 않았다. 이렇게 탄생한 부대 ‘친디트’는 교량과 철도를 파괴하고 기습공격을 감행해 일본군 사기를 떨어뜨렸다. 도전은 창의를 낳는다. 윙게이트의 무모한 도전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정글에서 작지만 값진 성과를 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