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좋은 기업]사명감·만족감… 훌륭한 기업엔 돈보다 큰 것이 있다

  • 동아일보

직원이 사랑하는 한국기업들

LG전자가 직원들의 창의력을 북돋기 위해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 만든 ‘오아시스 캠프’. 회의실 겸 작업실, 휴게실로 사용한다. 고급 커피머신이 내는 향긋한 내음 속에 슬리퍼를 신은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LG전자가 직원들의 창의력을 북돋기 위해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 만든 ‘오아시스 캠프’. 회의실 겸 작업실, 휴게실로 사용한다. 고급 커피머신이 내는 향긋한 내음 속에 슬리퍼를 신은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빈둥거려도 돈을 많이 주는 회사. 주말과 공휴일은 모두 쉬고 오후 6시면 칼처럼 퇴근하는 회사. 1년에 휴가를 3주씩 갈 수 있는 회사…. 꿈 같은 직장 같지만 아니다. 일하기 좋은 기업은 이런 회사들이 아니었다.

매년 일하기 좋은 기업 100곳을 선정해 발표하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지난해 뽑은 100곳의 특징을 독특한 가치에서 찾아냈다. 1위인 구글은 사명감으로 일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검색 가능하도록 만들어 인류의 지식을 증진하겠다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직원들은 높은 연봉과 공짜 점심, 다양한 복지혜택도 사랑하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의 일이 매일매일 기술을 이용해 세상을 발전시키는 일이라는 데서 느끼는 만족감을 가장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 돈보다 중요한 가치

2위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다른 가치’를 강조한다. 수익과 효율만 추구하는 냉혈한 같아 보이는 컨설팅 회사 직원들이 가장 사랑한 가치는 역설적으로 ‘따뜻한 봉사’였다. BCG 직원들은 연봉을 그대로 받으면서 일정 기간 자신들의 컨설팅 능력을 유엔 산하기구나 세이브더칠드런 같은 자선단체에 재능기부 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 다른 이를 돕는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이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다. BCG는 중미의 아이티에 대지진이 났을 때 자원한 일부 직원들이 현지 구호활동도 벌였다.

스위스 취리히의 구글 스위스 지사에 설치된미끄럼틀. 구글 제공
스위스 취리히의 구글 스위스 지사에 설치된
미끄럼틀. 구글 제공
구글에 밀렸지만 14년 동안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를 지켰던 미국의 소프트웨어 업체 SAS는 ‘회사가 곧 가족’이다. 회사는 자녀를 위한 여름 캠프는 물론이고 직원들에게 세차 서비스를 지원하고 직원을 위한 미용실도 만들었다. 온 가족을 위한 복지혜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일 이외의 모든 걸 회사가 처리해주는 분위기. 직원들은 “존중받으며 일한다는 느낌 때문에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 기업의 사례를 보면 마치 꿈속 같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꿈 같은 기업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기업들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고, 밤새워 일하면서 코피를 쏟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건강한 가치를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그것이 사회 속에서 인정받자 큰 보상으로 돌아온 것뿐이다. 많이 놀고 많이 받고 적게 일하는 회사는 행복한 기업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일 가능성이 높다.

○ 한국판 일하기 좋은 기업


국내에도 이렇게 건강한 윤리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기업들이 있다. 한국판 일하기 좋은 기업들이다. 한국능률협회의 ‘일하기 좋은 기업’ 조사에서 삼성전자와 더불어 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SK텔레콤은 눈에 보이는 복지제도나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기업을 일하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고 생각해 왔다. 회사의 비전을 구성원이 공유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스스로 발전하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다양한 교육제도를 통해 직원들의 자기계발을 돕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꼽힌 삼성전자는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직원들이 ‘스마트워크 센터’를 통해 회사에 나오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도입했다.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의 결과 중심으로 평가받도록 해 개인의 자율성을 높인 것이다.

특히 이런 식의 자율과 창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업무에서 벗어나 개인이 꿈꾸던 일을 맘껏 현실화하도록 돕는 ‘창의개발연구소’도 운영한다. “실패해도 좋다”며 도전적인 과제를 진행하게 하는 이 연구소 덕분에 삼성전자는 기업 스스로뿐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올해 초 개발된 눈동자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장애인용 안구(眼球) 마우스 등이 여기서 개발됐다.

이와 같이 다양한 기업들이 복지 혜택과 경제적 보상은 기본으로 여기면서 이보다 중요한 비전과 가치를 직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CJ의 경우 이재현 회장이 “기업은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꿈지기’가 돼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그룹 경영에 구현하고 있다. 직원들의 여행비나 문화공연 감상비를 회사가 나서서 지원하는 게 바로 이런 신념에서 비롯된 제도다.

STX는 강덕수 회장이 직접 매년 신입사원 과제 발표회에 임원진과 함께 참석한다. 기업의 가치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며 소통하겠다는 뜻에서다. GS그룹의 목표는 ‘가족 경영’이다. 경영에 가족을 참여시키는 게 아니라 임직원 모두가 회사를 가족처럼 여기고, 임직원 가족들도 회사 덕분에 행복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14일을 몰아서 쉬는 ‘리프레시 휴가’ 등이 이런 철학에서 나왔다.

LG그룹은 다양한 형태의 직원 창의력 개발과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제도를 고안하면서도 이 모든 걸 한마디로 요약한다. 바로 “즐겁게 일하라”는 것이다. 구본무 회장이 직접 강조하는 이 원칙은 무한경쟁의 끝에서도 직원들에게 여유를 갖고 한발 앞선 제품을 만들게 하는 힘이 된다고 한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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