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IBK기업銀 ‘손해보는 장사’ 주목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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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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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경제부 기자
김유영 경제부 기자
‘생재유대도 신용득중부(生財有大道 信用得中孚)’

최근 만난 한 은행장의 집무실에는 이런 글귀의 서예 작품이 걸려 있었다. ‘재산을 쌓을 수 있는 가장 큰 길은 재산을 쌓는 가운데 신용을 얻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이 은행은 이 글귀를 따르고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꾸준히 내렸다. 고객들로부터 신용은 얻었지만 올해 3950억 원의 이자 수익을 포기하면서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2분기(4∼6월)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35% 급감했다. 그런데도 이 은행은 “대출금리를 한 자릿수로 떨어뜨리겠다”고 공언한다.

이는 IBK기업은행의 얘기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밑지는 장사’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외환위기 직후 대출금리가 연 20%를 넘나들자 중소기업들이 패닉에 빠졌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금리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으로 심리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지요. 지금도 다르지 않아요.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오는데 고객에게 큰 힘이 되어야지요. 경제는 심리전인데, 대출금리를 올려 고객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사인을 미리 보내 안심을 주고요.”

이는 최근 몇몇 시중은행의 움직임과는 다른 ‘경영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시중은행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출금리를 일제히 내리고 자정 결의대회를 열며 소비자 관련 부서를 확대 개편하고 있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활용해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일부 은행의 대출 서류 조작과 학력에 따른 금리 차별 논란까지 겹친 데에 따른 자구책이다.

하지만 이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출금리 인하의 실상을 뜯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대부분 일반 대출금리가 아닌 최고 대출금리만 내려 신용등급이 나쁜 고객들만 금리부담이 낮아졌다. 혜택 받는 고객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반면 기업은행은 지난해 9월 연체 대출 금리를 내렸고, 같은 해 12월 15만 곳에 이르는 대부분의 기업고객들을 대상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했다. 올해 8월부터는 대출금리 상한선을 내리겠다고 6월에 일찌감치 발표했다.

이런 점에서 조 행장 집무실의 글귀는 다른 은행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객의 신용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일관된 행동(consistency)과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이다. 달리 말하면 ‘평소에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고객의 마음을 사고 신뢰를 쌓는 지름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김유영 경제부 기자 abc@donga.com
#IBK기업은행#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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