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걸은 왜 알파맘이 되지 못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8일 03시 00분


■ 한경연 ‘저출산 시대 인력활용’ 보고서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고 국내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모 씨(36·여).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남성들에게 뒤지지 않는 전형적인 ‘알파걸’이었던 그는 최근 입사 이후 처음으로 사표를 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하나뿐인 아들이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아이가 더 어렸을 땐 육아시설에 맡기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며 “아이 공부까지 입주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국의 알파걸들이 알파맘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했다. 한경연은 17일 발간한 ‘저출산 시대에 대비한 기업의 인력활용’ 보고서에서 ‘고학력 엄마’일수록 자녀의 연령대가 올라가더라도 경제활동에 복귀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고학력 여성에겐 자녀 교육이 경제활동 결정에 중요한 요인임을 보여준다.

주부모델 심성은 씨와 딸이 기사 분위기에 어울리게 연출한 사진.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주부모델 심성은 씨와 딸이 기사 분위기에 어울리게 연출한 사진.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중졸 이하 여성은 자녀가 유치원생일 때 직장에 다니는 비율이 20.1%에 그쳤지만 자녀의 연령대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이 비율이 각각 42.8%, 55.2%, 56.6%로 수직 상승했다. 고졸 여성도 자녀가 유치원생일 때 일하는 비율은 29.7%지만 고등학생일 때는 44.3%가 일한다. 전문대 졸업자도 자녀가 유치원생일 때는 38.4%가 일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43.1%로 소폭 높아졌다.

하지만 대학교 이상의 학업 과정을 마친 여성들은 자녀의 연령대에 관계없이 고용률이 모두 30% 이하를 맴돌았다. 자녀가 유치원생인 대졸 여성의 고용률은 27.4%이고 고등학생인 경우도 29.5%에 그쳤다.

변양규 한경연 연구위원은 “고학력 여성일수록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기준 국내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82.4%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특히 국내 여성 취업지원정책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고학력 여성들의 경력 단절 문제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학력 엄마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교육 연계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한경연은 보고서를 통해 “교육도우미 제도를 도입해 고학력 여성들의 경제활동 복귀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도우미란 초중고교생 자녀의 방과 후 일정을 관리해주는 일종의 학습 매니저로, 부모를 대신해 아이의 숙제와 학원 스케줄 등을 관리한다. 한경연은 “정부가 신원이 보증된 고학력 인력 풀을 확보해 교육도우미 제도를 도입하면 고학력 여성들도 시간 제약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거지 또는 자녀 교육에 편리한 곳에 사내(社內)와 동일한 PC 환경을 조성하는 ‘스마트워킹 시스템’도 대안이 될 수 있다. KT는 지난해 4월부터 특수 직군을 제외한 전 직원의 직무를 분석해 원격 협업과 성과 식별이 가능한 경우 재택근무나 경기 분당사옥에 마련한 ‘스마트워킹센터’ 근무를 장려하고 있다.

:: 알파걸(alpha girl), 알파맘(alpha mom) ::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하거나 남성보다 뛰어난 여성을 알파걸이라 한다. 알파맘은 탄탄한 정보력을 앞세워 아이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엄마를 의미하는 신조어. 기사에서는 알파걸로 자라나 일과 가정에서 모두 뛰어난 여성을 일컫는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알파걸#알파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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