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기술’ 만원짜리 USB 담아… 지갑-벨트에 숨겨 빼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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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조 시장가치 아몰레드 기술 유출… 또 뚫린 산업보안

기술은 ‘첨단’이지만 보안은 ‘구식’이었다. 90조 원의 가치를 지닌 핵심기술을 빼내는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와 LG디스플레이(LGD)의 차세대 모바일 디스플레이인 아몰레드(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이 협력업체 직원을 통해 외국에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내 산업보안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카드형 USB로 기술 유출

디스플레이 패널 검사장비 납품업체인 오보텍코리아㈜ 현장관리 담당자 김모 차장 등은 수시로 SMD, LGD 공장을 드나들었다. 불량품을 찾아내는 게 이들의 일이었다. 제조 공정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곧장 점검을 해야 해 이들은 공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오보텍 본사에서 기술을 빼낼 적임자로 삼성과 LG 공장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김 씨 등을 지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 씨 등은 지난해 11월 오보텍 본사의 지시에 따라 삼성과 LG의 아몰레드 기술을 빼내기로 했다. 55인치 대형 아몰레드 TV용 디스플레이 패널을 구성하는 실물 회로도 이미지가 목표였다. 물론 드러내놓고 기술을 빼올 수는 없었다. 김 씨 등은 공장에 출입하기 전 “업무수행 중 또는 업무와 관련 없이 취득하게 되는 모든 정보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보관하거나 유출하지 않는다”고 영업비밀보호계약서도 작성한 터였다. 또 공장에서는 모든 직원에 대해 어떠한 서류나 휴대용 저장장치인 USB 메모리도 가지고 나갈 수 없도록 감시했다. 하지만 허점은 많았다.

이들은 시중에서 1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카드형 USB 메모리를 몰래 가지고 들어갔다. 신용카드인 것처럼 지갑에 넣어 다니기도 하고 금속탐지기를 피하려 금속재질의 벨트 버클 안쪽에 숨겨 나오기도 했다. 공장 안에서 기술을 빼내는 동안에도 제재는 없었다.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해서 24시간 옆에 붙어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검사장비를 다루는 협력업체 직원은 내부 회로도를 접할 수밖에 없는데 24시간 붙어서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감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외국 유출은 어떻게 막나

김 씨 등은 빼돌린 기술을 이스라엘에 있는 본사와 중국, 대만지사로 보냈다. 특히 디스플레이업체인 중국 BOE, CSOT와 대만 AUO와 치메이전자의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에게도 이 자료가 전달됐다. 삼성과 LG의 경쟁사인 이들 회사로 관련 기술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중국 BOE 계열사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 씨가 오보텍 중국지사를 통해 BOE 생산라인 측에 기술을 건넨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사법권이 미치지 않아 이들 경쟁사에 해당 자료가 넘어갔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스라엘 본사에 대한 수사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검찰은 기술 유출을 지시하고 이를 모아 관리한 핵심은 본사 임원이라고 보고 있지만 압수수색 등 강제적인 수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검찰은 “본사 임원에 대해 출석을 요청하고 인적사항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 업체에 대해 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유출된 기술을 돌려받고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없다. 검찰 관계자는 “기술이 한번 넘어가면 경쟁사가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회로도를 돌려받는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채널A 영상] ‘90조’가치 핵심기술 불과 만원짜리 USB에…

○ 기술유출 보안 구멍 막아야


이번 사건처럼 외국계 협력업체가 기술 유출을 주도한 사례는 또 있다. 2010년 2월 적발된 메모리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협력업체였던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회사인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의 한국지사가 6년간 삼성전자의 D램과 낸드플래시 제작 공정 등 기술을 SK하이닉스에 유출하다 검찰에 적발됐다. 국내 기업과 경쟁관계인 외국 기업이 기술을 빼낸 사례도 있다. 4월 삼성의 아몰레드 관련 기술을 빼돌리려 한 조모 씨는 LGD 임원으로 입사하는 게 무산되자 중국 디스플레이업체인 BOE로 기술을 유출하려다 검거됐다.

해마다 첨단기술 유출 건수와 피해 금액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과 정부가 기술개발에 쏟는 관심에 비례해 보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아몰레드(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한 종류로 전력소모가 상대적으로 적고 더 정교한 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생산단가가 높아 그동안 휴대전화 등 소형 기기에 주로 쓰였으며 SMD와 LGD가 대형 아몰레드TV 양산을 앞두고 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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