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과 달리 올해 증시 출발은 일단 나쁘지 않다. 비록 그 힘의 원천이 외국인투자가들의 유동성이며 그 많은 돈의 뿌리가 금융위기 수습에 있지만 말이다.
더욱이 고성장을 이어가려는 중국과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힘쓰는 일본까지 ‘돈 풀기’에 적극 가담해 지구촌은 지금 ‘돈 풍년’의 기운이 가득하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반영해 글로벌 주가가 이미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특히 아시아에 많은 돈이 몰려들면서 주가가 달아올랐다. 이 시점에서 유동성 장세를 즐기기 전에 꼭 챙겨봐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이제는 유동성 자체가 늘어나는 것보다 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가 중요한 때이다. 원래 경기가 회복되는 단계에서는 신용경색, 즉 ‘돈맥경화’가 풀리면서 오갈 데 없는 자금이 위험자산을 쫓아 움직이기 마련이다. 앞으로는 단순히 통화가 늘어나는 것보다는 이미 찍어 낸 돈들이 얼마나 잘 도느냐가 중요하다. 최근 월간 신용카드 사용액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고 고용시장에도 봄기운이 도는 미국의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호전된 미국 시장의 모습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일단 돈이 넘쳐흘러 가계와 기업에 ‘유동성 순환’의 징후가 있음은 분명하다.
둘째, 이제부터 각국 증시는 실적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상으로 흐를 텐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불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발표된 한국 기업의 실적으로 계산한 한국 증시의 보수적인 주가 프리미엄(주가순자산비율·PBR)이 아직 1.3배에 못 미친다. 2000년 이후 같은 지표의 평균값이 1.2배였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이제 겨우 글로벌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정도의 주가 수준에 와 있는 셈이다. 또한 올해 말 예상실적을 기준으로 한 PBR는 1.1배로 더 낮다. 물론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올해 우리 기업의 이익전망치가 낮아지고 있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던 기존 전망치를 재조정하는 데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국내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작년 4분기 14조5000억 원에서 올 1분기 22조 원, 3분기 26조 원의 증가 추세로 추정된다.
끝으로 한국 증시는 세계 동일업종 내 경쟁구도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좋은 기업을 많이 품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경기순환의 수혜를 넘어 구조적인 경쟁력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글로벌 주가차별화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후보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시중에 돈은 넘치고 성장탄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성공기업과 실패기업의 명암은 더욱 갈리는 법이다. 올해 외국인들이 한국의 글로벌 성장주에 좀 더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할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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