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DJ정부… 재벌개혁 ‘제3의 물결’

  • 동아일보

■ 재벌정책의 역사
MB정부 친기업 내세웠지만 후반기 들어 되레 규제 강화

재벌규제 정책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민주화가 가장 억압받던 전두환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2·12 신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는 부족한 정치적 정당성을 정치 이외의 영역에서 얻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고 재벌규제 역시 그 일환으로 시도됐다. 1964년 초안이 나온 뒤 흐지부지되던 공정거래법이 1980년 제정돼 담합행위 규제, 독과점 방지, 공정거래위원회 신설 등이 처음으로 법에 명문화됐다.

본격적인 1차 재벌규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시작됐다. 정치 경제적 민주화 요구가 높아지면서 정부가 재벌 행태에 본격적으로 메스를 대기 시작한 것. 특히 재벌규제 정책의 상징인 대규모기업집단제도와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1987년에 처음 도입됐다. 재벌로 통칭되는 기업그룹을 ‘대규모 기업집단’이란 법적 개념으로 정리해 재벌정책의 기준으로 삼았다.

김영삼 정부 들어선 재벌정책이 소강기에 접어든다. 정권 초기 재벌개혁을 강하게 내세웠지만 현대그룹, 포항제철(현 포스코) 세무조사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개혁 대상이 정치적 목적과 결부되면서 개혁의 동력을 잃어갔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의 원인이 정경유착과 재벌의 무분별한 투자 때문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금융계의 시각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명실상부한 2차 재벌개혁을 추진한다.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업종전문화, 경영진 책임 강화라는 5대 원칙을 토대로 ‘5+3 재벌개혁’이라는 큰 틀이 제시됐고, 이를 위한 다양한 수단이 동원됐다. 폐지됐던 출총제가 1년 만인 1999년 부활했고 지배구조 투명화 목적으로 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됐다. 5대 재벌 ‘빅딜’(사업부문 맞교환)과 30대 대기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재벌의 판도가 재편됐고, 대기업 부당 자금지원과 관련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금융거래정보 요구권이 부여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을 완화(30%까지 허용)하고 대규모기업집단 기준(상위 30위→자산 2조 원 이상)도 느슨해지며 개혁의지는 점차 약화됐다.

노무현 정부 때는 겉으론 재벌들과 각(角)을 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도적인 변화가 크지 않았다. 2003년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세우고 기업지배구조 투명화, 재벌의 금융지배 차단 등을 추진했지만 출총제 규제비율이 25%→40%로 오히려 완화됐고 계열금융사 의결권 한도 축소(30%→15%) 외에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총제 폐지, 소득·법인세 인하 등 친(親)기업 정책을 펴오다 집권 후반기 대기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재벌규제로 U턴하는 모양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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