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자본주의’ 일자리로 풀자]<4>서비스산업 ‘울타리’ 낮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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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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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관광산업 규제개혁 성공땐 청년실업자 절반이상 구제

청년을 위한 최고의 일자리 창출 방법이 서비스산업 규제 혁파라는 데 이견을 다는 전문가는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서비스산업 중 의료분야의 규제만 풀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최소 4만8000개, 외국인까지 몰려드는 의료관광산업으로까지 발전하면 18만7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올해 10월 기준으로 청년 실업자가 32만4000명임을 감안하면 의료산업 규제 개혁이 청년 실업자의 절반 이상을 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처방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서비스산업 ‘빅뱅’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 약사 등 이른바 힘 있는 전문가 집단의 로비 때문에 국회와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카고대의 조지 스티글러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정치권이 이익집단에 포획(捕獲)됐다”고 압축적으로 규정했다. 그는 ‘포획이론’에서 경제주체들이 이익집단을 형성하면서 정부를 설득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제정책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규제들은 일자리 창출에 저해되는 진입장벽이 되지만 한번 생긴 규제는 이익집단의 반대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익집단의 인질로 잡혀 있는 정부와 정치권이 청년 일자리 창출에 매달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① 이해관계 얽힌 이슈 ‘대선 공약’으로 내걸어야


경제 전문가들은 “서비스산업의 규제 개혁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기 때문에 국회에 맡기기 어렵다”며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선주자들은 2012년 대선에서 서비스산업 규제 개혁 관련 대선공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유권자들은 규제 혁파를 주장하는 대선주자에게 표를 몰아주라는 얘기다. 이렇게 해야 대통령 취임 즉시 서비스산업 규제 혁파 공약을 실천하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서비스산업 선진화처럼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이슈는 차기 대권주자가 공약으로 국민의 의견을 물은 뒤 국민의 명령이라는 명분으로 반대 입장을 굴복시켜야 한다”며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서비스 빅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이번 정권에서 서비스산업 선진화 추진은 물 건너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제대로 된 논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선거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며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끝난 이후라야 다시 추진동력이 모아질 것”이라고 했다.

사실 국회의원들은 서비스산업 규제 개혁은 피해 가고 싶은 주제다. 정치 공학적으로 얻는 표보다 잃는 표가 많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대선주자들도 이런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견해를 표명한 적이 없다. 당 차원에서도 정치자금을 주거나 선거에서 표를 몰아주는 결집력이 없는 청년들을 위해 법안을 만들기보다 소수지만 적극적인 이익집단이 무섭다.

가정상비약을 약국뿐 아니라 슈퍼마켓에서도 판매하자는 정책이나 영리병원 도입 법안을 국회의원들이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성동구지역약사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약국외 판매를 추진하던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회원이 3만 명인 대한약사회나 10만 명의 의사가 결집한 대한의사회와 싸울 용기를 가진 국회의원과 장관을 찾기는 어렵다.
② 전문직협회 복수로 허용해 로비력 약화시켜야


의사, 약사, 변호사 등 ‘사’자가 붙는 전문직들은 이익 향유를 위해 집단적으로 협회를 구성해 똘똘 뭉친다. 탄탄한 자금력과 논리는 그들의 주무기다. 정부 부처나 국회에 로비를 하거나 국회에 직접 진출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공고한 전문직 이익집단의 아성을 깨기 위해서는 독점적 지위가 부여된 법정단체를 임의단체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복수단체를 자유롭게 허용해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다.

고영선 KDI 연구본부장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이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직접 관리와 감독을 전제로 자격사 단체를 임의단체로 바꿔 이들의 파워를 약화시키고, 단체 간 경쟁을 통한 서비스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주요 단체들은 면허를 딴 자격소지자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돼 있다. 자격등록 접수나 자격시험 관리를 협회가 하는 곳들도 많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전문직 단체를 임의단체로 해서 복수로 두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간 정부는 전문직을 과도하게 보호해 왔다. 국가가 이들의 전문성을 보증한다는 차원이었지만 시장진입 규제를 통해 높은 보수가 유지될 수 있도록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부작용이 컸다는 지적이 많다. 사실 의사, 약사, 회계사, 변호사, 건축사, 세무사 등 국내 전문직 종사자는 외국에 비해 매우 적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한국의 변호사 1인당 인구가 5891명, 공인회계사 3950명, 세무사 6606명, 감정평가사 1만9569명 등 전문직 종사자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도 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김두얼 KDI 부연구위원은 “어느 정도 능력이 있으면 자격을 부여해 스스로 서비스를 개발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진입을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빗장이 쳐진 문을 열어 전문직 자격시험 합격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이 고용시장으로 편입돼 취업자가 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질 좋은 서비스가 생겨나게 된다. 변호사가 많은 미국에서는 법률자문 및 수임료가 저렴해지면서 개인변호사가 보편화됐다. 개인들은 손쉽게 소송대리가 아닌 법률자문, 계약체결, 공증 등 세세한 업무까지도 변호사에게 맡기고 중소기업들도 회사 운영에 필요한 각종 법률 자문서비스를 손쉽게 받을 수 있다.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일자리가 늘고, 전문직을 보조하는 일자리가 새로 생기는 등 부수 효과도 적지 않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를 개편해 규제개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1998년 설립된 규제개혁위원회는 같은 해 변호사협회의 변호사 징계권을 국가가 환수하고 복수의 변호사단체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포진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제동으로 법안이 변질됐다. 이후에도 각종 규제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규제 개혁은 실패했다.

황윤원 중앙대 교수(행정학)는 “규제개혁위원회는 민관합동의 자문회의체에 불과해 ‘명분 쌓기’ 위원회에 불과하다”며 “규제개혁위원회를 개편해 공정거래위원회처럼 전문성을 지닌 상설 정부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③ 국회의원 의정활동 포털사이트 만들어야


모든 법률개혁은 결국 입법권을 행사하는 국회에 달렸다.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는 청년들과 그 부모들의 피눈물은 외면한 채 정치자금을 갖다주고 압력을 행사하는 이익집단의 눈치만 보는 국회의원의 행태를 고치기 위해서는 의정활동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치문화를 만들려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유권자들이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의정활동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의원들이 어떤 발언과 표결을 했는지 등을 정리한 포털사이트를 만들자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유권자들, 특히 청년들은 의정활동에 대한 정책평가를 철저히 하고, 그 결과를 다음 선거 때 표심으로 피드백해야 된다”며 “이런 과정이 축적돼야 특정 이익집단의 영향을 받지않고 국민 전체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청년일자리 창출을 촉구할 시민단체도 생겨야 한다. 지지부진한 ‘약국외 판매’ 문제도 올해 1월 25개 소비자단체, 시민단체들로 결성된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가 출범하면서 약사와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다른 국회의원들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20대나 30대가 일정 부분 국회로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이 연합해 16일 출범한 민주통합당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25∼30세, 31∼35세 청년을 대상으로 각각 남녀 2명씩을 비례대표로 공천하기로 했다. 또 당의 핵심정책으로 청년실업 해소,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내세우고 있어 이 같은 움직임이 정치권에서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는 “청년 비례대표제는 국회가 청년 실업문제 해결에 주력하겠다는 상징성을 띤다”며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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