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창의개발연구소’ 첫 과제는… 장애인용 안구마우스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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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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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환자에 도움주자” 사내동호회서 개발 시작
뒤늦게 안 회사서 전폭지원 기존업무 면제 연구 전념케

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창의개발연구소’에서 안구마우스 개발 TF팀이 제품 개발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개발한 안구마우스용 카메라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오른쪽). 삼성전자 제공
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창의개발연구소’에서 안구마우스 개발 TF팀이 제품 개발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개발한 안구마우스용 카메라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오른쪽).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소프트웨어엔지니어 조성구 책임은 올봄 아이디어 강연 사이트인 ‘TED’에서 감명 깊은 사연을 만났다. 믹 에블링이라는 사람이 전신이 마비된 그래픽 아티스트를 위해 눈동자 움직임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이라이터’를 개발한 이야기였다.

“국내의 루게릭 환자를 위해서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안구마우스’를 내가 직접 개발하면 어떨까.”

안구마우스는 전신마비로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글을 입력하고 인터넷을 서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 하지만 시중의 일본 제품 가격은 1200만 원이 넘을 정도로 비쌌다.

“10만 원 정도 재료비가 드는 저렴한 제품을 만들면 여유가 없는 환자들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조 책임이 사내 동호회인 ‘테드삼성’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밝히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정진용 책임, 무선사업부 이준석 사원, 글로벌전략실 유경화 대리 등도 함께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업무를 마친 뒤 저녁과 주말을 활용해 기존 매킨토시 환경으로 개발돼 일부 공개된 마우스 제어 프로그램을 원도 기반으로 바꾸고, 안경과 웹캠을 직접 납땜해 가며 붙여 하드웨어도 만들었다.

어느 정도 시제품이 완성됐다고 생각한 7월. 이들은 삼성전자 사회봉사단과 한국장애인개발원, 경기도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경기 평택시에 사는 한 루게릭 환자를 찾았다. 하지만 곧 좌절에 빠져야 했다. 유 대리는 “사전 모의 테스트를 통해 나름 환자의 상황에 맞췄다 생각했지만 실제 환자를 만나 적용하려니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환자의 안면 근육이 퇴화돼 무거운 안경을 오랫동안 쓰고 있을 수 없었고 호흡기 등 보조 장비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세팅하는 것부터 무리였다.

제품이 실제 쓰이기 위해서는 개선할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환자 실정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다시 전력을 쏟았다. 회사 업무도 힘들었지만 틈나는 대로 모여 머리를 맞댔다. 무거운 안경 대신 얼굴에 닿지 않고 눈앞에 세워둘 수 있는 안구인식카메라를 개발했다. 정기적으로 환자를 방문해 현장 테스트를 벌였고 실제와 비슷한 환경을 연출하기 위해 레고 블록으로 모형을 만들어 실험을 계속했다.

이들의 활동을 전해들은 회사 측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마침 삼성전자는 ‘창의적인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조직에 어떤 변화를 주느냐를 회사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현업에서 빠져 아이디어 실현에 전념할 기회를 주자.”

무모하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회사는 혁신을 위해 과감한 정책을 펼치기로 하고 ‘창의개발연구소’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창의개발연구소 과제로 선정되면 최대 1년까지 기존 업무에서 벗어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태스크포스(TF)팀 활동을 하도록 회사에서 지원하기로 한 것. 첫 과제로 ‘장애인용 안구마우스 개발팀’이 선정됐다. 이들은 1일부터 기존 소속 팀에서 나와 회사에서 제공한 별도의 공간에서 안구마우스 개발에만 전념하고 있다.

조 책임은 “TF에서 개발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공개할 계획”이라며 “우리의 노력이 출발점이 돼 정부기관이나 학교 연구기관 등이 참여해 많은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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