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이하 제냐)는 고급 남성의류의 대명사다. 창업자의 이름을 딴 이 회사의 맞춤복 ‘수 미주라’는 한 벌에 수천만 원이나 한다. 제냐는 세계 80여 개국에서 560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상위 1%의 남성 고객을 상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조5000억 원에 이른다.
1910년 설립 이후 제냐 가문이 줄곧 경영까지 맡고 있는 이 패션 그룹에는 ‘제냐 재단’이란 조직이 있다. 그룹의 사회공헌활동을 이끄는 제냐 재단에는 비서 1명 외에는 다른 임직원이 없다. 제냐 가문 일가 모두가 ‘활동대원’이기 때문이다.
2000년 설립된 제냐 재단을 이끄는 안나 제냐 이사장(사진)은 15일 중국 베이징(北京) 투데이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제냐 중국 진출 2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기업 하나가 지구를 구할 순 없지만 인간 한 명 한 명의 존엄을 지키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온기가 사회 전체로 퍼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안나 제냐 이사장은 제냐의 창업주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손녀로, 1984년부터 제냐 그룹의 홍보를 맡으며 가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제냐 재단 이사장직 외에 제냐 스토어·이미지 디렉터도 맡고 있다.
제냐 재단은 2004년부터 세계자연보호기금(WWF) 중국지부와 함께 산시 성에서 ‘판다 이동통로 보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판다 이동통로 보호는 친링 산맥에 사는 판다를 보호하는 동시에 생태관광을 통해 인근 지역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공헌활동이다. 예컨대 관광객들이 판다 서식지를 침범하지 않고 숲을 걸을 수 있도록 산책로와 다리를 만들어 연간 7억 원이 넘는 입장료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제냐 이사장은 “제냐 재단이 추구하는 사회공헌활동은 이처럼 ‘고기 낚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냐 재단은 앞으로 판다 서식지에 50ha의 대나무 숲과 8000ha의 산림을 조성해 앞선 산시 성 외에 3곳을 생태관광자원으로 추가 개발해 지역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내 사회공헌활동에는 인색하다는 최근 지적에 대해 제냐 이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자에게 명함을 건네며 “한국에 가볼 기회가 없어 한국사회를 잘 알지 못한다”며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사회공헌활동을 모색 중인데 내게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힌트를 줄 수 없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 밖에도 제냐 재단은 미국 세인트주드 병원과 함께 2006년부터 중국 내 소아 백혈병 환자를 무상으로 치료해주고 있다.지금까지 55명의 아이들이 제냐 재단의 후원으로 백혈병을 완치했다.
제냐 이사장은 “‘베푸는 삶을 추구하면 당신의 삶도 관대해진다’는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며 “기업의 존속을 위해서 제냐 재단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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