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서울대 CFO 전략과정 CASE STUDY]두산 그룹이 ‘IR의 달인’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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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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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식 좋아” 10명보다 “이 주식 안 사” 1명도 없게…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는 총 49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건설장비회사 밥캣을 인수했다. 한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인수합병(M&A)이자 한국 기업이 미국 대기업을 인수한 최초의 사례였다. 하지만 밥캣 인수 후 1년 만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했다. 밥캣도 후폭풍에 휘말렸다. 실적이 악화된 밥캣을 위해 두산그룹은 2008년 8월 10억 달러의 증자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자본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증자 발표 후 당사자인 두산인프라코어 외에 증자와 관련이 없는 두산그룹 계열사 주가까지 모조리 급락했다. 투자자들에게 증자의 취지와 영향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밥캣 문제로 두산그룹이 겪은 홍역은 일종의 IR(Investor Relation·투자자 관리) 실패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IR이 경영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주가 급락으로 단순히 해당 기업과 주주만 타격을 입은 게 아니라 그룹 전체의 신뢰도와 이미지가 손상됐기 때문이다.

결국 두산그룹은 금융시장 및 투자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정립하는 게 사태 해결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란 결론을 내렸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서울대CFO전략과정과 공동으로 밥캣 사태 이후 두산그룹의 달라진 IR 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기사 전문은 DBR 77호(3월 15일자)에 실려 있다.

○ IR팀 위상 대폭 강화

증자 발표 직후 두산그룹의 자산 가치는 이틀 만에 무려 4조 원이 사라졌다. IR 부서의 주요 업무가 주가의 안정적 유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IR팀장이 질책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증자가 이뤄진 후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의 IR팀장을 부장에서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증권시장에 떠도는 추가 증자 등 루머를 잠재우고 이전과 다른 새로운 IR를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IR팀 인원도 늘리고, IR팀장을 최고경영자(CEO)가 주재하는 경영 회의에 참가하도록 했다.

곽수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원과 팀장이 접할 수 있는 사내외 정보의 양과 질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투자자들도 실무자보다는 임원과의 면담을 더 선호한다. 주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IR팀장을 모두 임원급으로 승진시켰다는 건 실패를 더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명확하게 알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각 계열사의 IR팀장이 모이는 협의체도 만들었다. 두산그룹 IR팀장들은 최소 한 달에 1회 이상 모여 각 계열사가 처한 쟁점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식으로 공조를 취할지 면밀히 준비했다. 증자 사태 때 증자에 참여하지도 않은 계열사의 주가까지 급락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IR 레터 발행도 정례화했다. 위기가 발생하면 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 명의로 IR 레터를 써 ‘현재 상황은 이렇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겠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일부 주요 주주에게만 발송하는 게 아니라 1000명이 넘는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단체로 발송한다.
▼ 최근 기업가치 평가기준 ‘이익’에서 ‘주가’로 변화 ▼

기업 내부 인사보다 금융시장과의 교감이 상대적으로 쉬운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들을 계열사 IR팀장으로 영입했다. 현재 두산그룹 내 전 상장회사의 IR팀장은 모두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이 맡고 있다. 이는 국내 대기업 중 유일하다.

○ 해외투자자를 상대하는 방식도 바꿔

두산은 해외 투자자들의 공장 견학 형식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꿨다. 실제 두산중공업은 투자자들에게 자사 공장뿐만 아니라 발전소도 함께 보여준다. 공장에서 두산중공업의 완성품인 터빈의 제조 과정을 본 후 이 터빈이 실제 사용되는 발전소를 함께 견학하는 식이다.

투자자가 진짜 궁금해하는 사안은 터빈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 터빈이 발전소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다. 투자자, 즉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이런 연계 투어를 생각해낼 수 있다. 발전소의 소유주인 한국전력의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유무형의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다. 손종원 두산중공업 IR담당 상무는 “자주 해외 IR를 나가서 더 많은 해외 투자자를 발굴하고 싶지만 시간과 비용의 제약이 있다. 우리는 국내에 찾아온 해외 투자자에게 훨씬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IR를 개최하면 회사 소개, 공장의 위치,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 등 다양한 주제를 짧은 시간에 참석자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어렵게 만나도 수박 겉핥기 식 얘기만 나눌 때가 많다. 반면에 해외에서 한국으로 기업 탐방을 오는 외국인투자가라면 이미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가진 사람이다. 그만큼 해당 회사에 대한 관심과 투자 의지가 높다. 따라서 이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한국 기업이 해외 IR를 할 때는 CEO를 비롯한 고위 임원이 대거 참가하면서도, 국내에 직접 찾아오는 투자자들의 응대는 실무자급에게 맡긴다. 손 상무는 “IR 담당자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투자자 집단을 잘 발굴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 내부에 IR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산업재를 생산하는 중공업 분야의 특성상 IR의 필요성을 납득하지 못하는 직원도 종종 있었다. 특정 부서의 실적이 유달리 좋게 나왔을 때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IR팀이 적극 홍보하려 해도 이익을 많이 낸 사실이 알려지면 고객들이 납품 단가부터 깎으려 든다며 일부 직원은 강하게 반대했다.

두산 IR 담당자들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최근 기업 가치 평가 기준이 ‘이익’에서 ‘주가’로 바뀌고 있으며 IR 활동을 잘해야 시장의 신뢰가 높아져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이 회사를 믿게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투자자와 신뢰가 형성되면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른 기업보다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 빨리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 또 한 번의 주가 급락은 없었다

2010년 5월에는 밥캣의 실적 악화 때문에 두산그룹이 추가 증자를 해야 한다는 루머가 시장에 돌았다.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또 급락했다. 하지만 2008년 홍역을 치른 두산중공업은 이번 사태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두산중공업의 CFO인 최종일 부사장은 기관투자가들과 각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추가 증자는 없다고 밝혔다. 주가는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손 상무는 “주식시장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IR의 역할은 ‘이 주식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 투자자를 10명 만드는 게 아니라 ‘다시는 이 주식 안 산다’는 투자자가 1명도 없도록 하는 일”이라며 “그래야 안정적인 주가 관리와 시장의 신뢰 형성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적극적 정보 공시의 4가지 효과

IR를 포함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정보 공시 활동은 기업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다양한 학술 연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효과를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시를 자주 하는 기업일수록 실적 전망의 정확성이 높아지고 주가도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공시를 자주 하면 해당 기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이들이 발표하는 실적 전망도 정확해진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의 미래 이익을 더욱 정확히 예측해 현재의 주가에 반영할 수 있다. 해당 기업의 주가 역시 현재의 이익보다는 예측된 미래 이익에 따라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미래 이익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 특정 분기의 실적 악화 때문에 주가가 급격하게 변동하는 일도 줄어든다.

둘째, 기업이 정확한 공시를 자주 해 투자자와 금융회사로부터 신뢰를 얻으면 자본 조달 비용이 줄어든다. 특히 관련 뉴스가 자주 보도되는 대기업보다 공시 이외에는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의 정보를 자주 접할 길 없는 중소기업일수록 자본조달 비용이 감소하는 효과가 더 크다.

셋째, 부정적인 소식을 적극적으로 미리 알리는 기업은 사전에 소송의 위험을 차단할 수 있다. 중요한 소식을 사전에 공시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 사실이 공개됐을 때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본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잠재적인 소송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IR가 필요하다.

넷째, 특정 시점에만 잠시 공시를 늘린다고 해서 이런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당 기업이 무슨 말을 해도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시해야 시장의 반응이 강하게 나타난다. 공시의 빈도와 정확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경영진의 명성도 높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7호(2011년 3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신체 약점 극복한 ‘로마軍 신화’의 비결은

▼ 전쟁과 경영


로마인은 유럽 여러 민족 중 체격이 작은 편에 속했다고 한다. 날래고 사나운 유목민족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덩치 큰 유럽 민족들이 그들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힘과 힘이 부닥치는 고대 육박전에서 평범한 체구의 로마인이 우세를 보인 비결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힘을 극대화하는 로마군만의 노하우에 있었다. 로마군의 혁신적 시스템, 공학기술, 체계적인 훈련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로마군은 오늘날 군인들이 쓰는 철모와 비슷하게 머리를 감싸고 측면에 귀마개 같은 쇠를 붙인 투구를 썼다. 머리와 얼굴까지 통째로 감싸고 눈과 입만 보이는 일체형 투구를 사용한 그리스군과는 달랐다. 살과 피가 튀는 아비규환의 전장에서 동료들과의 효율적인 대화와 팀워크는 강력한 경쟁력이다. 로마군은 팀워크와 통제가 생명인 밀집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한 그리스식 일체형 투구를 포기하고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리는 새로운 투구를 디자인했다. 그들이 쓰는 투창, 사각형 방패, 양날 검 ‘글라디우스’에도 로마군의 전략적 디자인이 녹아 있다. 구성원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해 집단의 힘을 극대화하고 신체적 약점을 극복한 로마군의 혁신을 생생한 사례와 분석을 통해 소개한다.



간디식 혁신, 동반성장의 야심을 현실로

▼ 스페셜리포트


‘기원후 500년경 인도의 한 수학자가 숫자 0의 개념을 만들었다. 그는 매우 놀라운 예지력을 가졌다. 인도에서 발생할 혁신의 숫자를 정확히 맞혔으니 말이다.’ 과거 인도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이 유행했다. 그만큼 인도는 혁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곗바늘이 마치 과거에 멈춘 것만 같았다. 하지만 최근 인도는 급부상하는 신흥시장이자 새로운 혁신의 원천이다. 영리한 인도 기업들은 신기술과 과감한 사업모델로 혁신에 나서 신흥시장의 가난한 이들도 살 수 있는 저렴한 제품을 설계하고 아주 적은 자본으로 대량 생산에 나선다. 분당 1센트짜리 통화료, 30달러짜리 백내장 수술, 2000달러짜리 자동차 등 믿기 힘든 가격의 제품과 서비스가 인도 시장에서 나왔다. 선진 기업들의 허를 찌르는 그들의 혁신은 공급망 관리, 인재 모집, 새로운 경영환경 구축 등 가치 사슬의 모든 요소를 바꿔놓고 있다. 신흥국가의 저소득층을 뜻하는 BOP(Bottom of the pyramid) 개념을 주창한 프라할라드 미국 미시간대 로스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를 ‘간디식 혁신(Gandhian innov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가 지난해 작고하기 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남긴 유고를 전문 번역해 소개한다.



안정적 수익 내는 기업 주가가 더 높다고?

▼ 맥킨지쿼털리


시장에는 투자자들이 불확실성을 꺼린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그래서 기업 경영진은 종종 이익 유연화(earning smoothing)에 매달린다. 등락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수익보다 안정된 수익을 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미 해당 업종에 변동성이 내재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맥킨지 조사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이 조사에서는 수익 변동성이 낮은, 즉 안정적 수익을 내는 기업의 주가가 더 높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확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변동성이 높은 기업들 중 상당수는 주주총수익률(TRS)이 높았다. 심지어 수익 변동성이 낮은 기업들의 상당수는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다가 일정 시점에 이르면 수익이 급감하는 패턴을 보였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수익 변동성을 줄이려는 시도도 별 효과가 없었다. 맥킨지의 컨설턴트들이 수익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 이익 유연화에 매달리기보다는 매출이나 자본수익률을 근본적으로 신장시키기 위한 의사 결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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