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초과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는 ‘이익공유제’가 거센 반대에 부닥친 가운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도 ‘반(反)시장주의’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동반성장 바람을 타고 정치권이 여러 건의 하도급법 개정안을 쏟아내면서 일부 조항을 두고 정부와 대기업이 시장주의에 역행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하도급법 개정안이 지난해 정기국회에 이어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또다시 표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국회 제출된 개정안만 16건
하도급법은 납품가격 협상에서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중소 하청업체들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안의 핵심은 원자재값이 15% 이상 오르면 하청업체가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통해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기술을 빼앗아 소송이 제기됐을 때 소송을 제기한 하청업체가 아니라 대기업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도록 하는 것.
하지만 하도급법은 최근 여야가 합의한 우선처리 민생법안에서 빠져 12일까지 열리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에 처했다. 지역구 소재 중소기업들의 민원이 빗발치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일부 의원이 정부안을 수정한 하도급법 개정안을 쏟아내 의견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동반성장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진 지난해 하반기에만 8건의 의원 입법안이 발의되는 등 현재 국회에 제출된 하도급법 개정안은 16건이나 된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이 발의한 하도급법 개정안에 포함된 ‘납품단가 연동제’와 ‘단체협상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 대기업은 물론이고 상당수 경제학자도 시장주의를 거스르는 과격한 조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가장 큰 반발에 부닥친 조항은 민주당 일부 의원이 제기한 ‘납품단가 연동제’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자재값이 오르는 만큼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를 올리는 제도다. 대기업과 중소 하청업체의 납품단가 협상이 일방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아예 대기업이 원자재값에 따라 자동적으로 납품단가를 올리도록 법으로 강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납품단가 연동제는 정부에 납품단가를 일일이 규제할 수 있는 사실상 ‘가격통제권’을 준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경제연구소인 한국경제연구원 신석훈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일일이 기업들의 납품계약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가격 규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 일부 조항 반시장적 논란
한나라당 일부 의원이 요구하고 있는 ‘단체협상권’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역시 시장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납품단가 협상권’은 계약을 했을 때보다 원자재값이 크게 오르면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하청업체를 대신해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하는 대신 아예 조합이 하청업체를 대표해 납품단가를 협상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납품단가 협상권의 도입은 하청업체들이 납품단가를 담합할 수 있는 공식적인 카르텔 조직을 허용해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비슷한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모여 가격인상 계획만 의논해도 가격담합으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중소 하청업체들이 납품단가를 결정해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통해 협상하도록 하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지적이다.
대기업이 중소 하청업체의 기술을 가로챘을 때 하청업체가 본 피해액의 3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역시 하도급법 위반에 대한 제재로는 지나치다는 평가가 많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영국과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지만 대규모 가격담합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만큼 국내 대기업에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무 부처인 공정위 역시 ‘납품단가 연동제’는 물론이고 ‘단체협상권’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동안 두 차례에 걸친 당정 협의에서도 의원들과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하도급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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