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MASSI/한국형 원조 노하우 찾아라]<1>도와주는 것은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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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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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기념식→리본커팅→사진촬영→방치··· “한국, 5종세트 원조”

한국은 1995년 원조 수혜국을 졸업한 데 이어 2009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DAC)에 가입해 가난한 나라들을 지원하는 정책과 의사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지위를 획득했다. 원조를 받았던 나라가 이런 지위에 오른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2010년 해외 원조 규모는 1조6000여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이제 어려운 이웃나라를 도와주는 일에 많은 사람의 공감대도 형성됐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다. 지원 액수도 늘려야 하지만 도와주는 방식도 고칠 게 많다. ‘단순한 베풂’을 넘어 받는 사람들이 진정 고마움을 느끼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보완해야 하는지, ‘한국형 원조’의 바람직한 길은 무엇인지, 원조 경쟁에 나서고 있는 외국에서 배울 점은 없는지, 6회에 걸쳐 싣는다.

○ 원조 난맥상

캄보디아 프놈펜 번화가 한가운데에는 가로로 넓은 용지에 ‘대구경북통상교류센터’라는 대형 한글 간판을 단 건물이 있다. 쇼윈도에는 한복을 입은 남녀 마네킹이 서 있다. 프놈펜 시내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건물로 꼽히는 이곳은 프놈펜 시가 용지를 제공하고 경북도가 개인투자자를 유치해 마련한 건물. 5층 건물 1층에 자리한 센터 한 곳에는 경북도 특산물이 전시돼 있고 다른 한 곳에는 경북도 관광안내를 하는 대형 시각물들이 놓여 있다. 드나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건물 밖에는 ‘렌트 구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경북도에서 상주 직원까지 두고 있지만 대사관이나 프놈펜 주재 한국국제협력단(KOICA)조차 이 센터의 운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프놈펜 시민들에게는 한국 지방자치단체가 원조를 해준답시고 땅을 제공받고는 임대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한국인들이 단일 국적 관광객으로는 가장 많이 찾는다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에서 차로 20분가량 가면 나오는 프놈크롬이란 마을에는 아예 한국의 지자체 이름을 딴 마을이 조성돼 있다. 한국의 지자체와 자매결연을 한 인연으로 마을길 포장공사, 교량 보수공사가 이뤄지고 최근 학교도 지어졌다는 소식이지만 관리가 안 돼 ‘유령 마을’이 되어 간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최근 이곳을 다녀왔다는 KOICA 관계자는 “현지 주민들이 한국의 시장이나 공무원들이 오면 ‘사진 찍기’용으로만 동원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며 “행사가 끝나면 학교가 텅 빈다며 지속적인 관리를 할 수 있게 봉사단원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사례들은 최근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해외 원조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남을 도와준다고 시작한 원조가 빛이 바랜 경우다.


이는 자료로도 확인된다. 현재 원조 집행기관은 둘로 나뉜다. 대가 없이 주는 무상원조는 외교통상부가, 낮은 이자만 받고 20, 30년간 나눠 갚는 조건으로 빌려주는 유상원조는 기획재정부가 관할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김효재 의원실이 조사한 2009년 무상원조 현황을 보면 외교부가 지원한 3690억 원(총 무상원조의 79.12%)을 제외하고도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공정거래위원회, 관세청 등 25개 정부 부처에서 한 무상원조가 947억 원, 서울 인천 부산 대구시 등 10개 지자체는 28억9000만 원에 이른다. 외교부를 거치지 않은 기관만 총 35개에 원조 액수만 총 무상원조액수(4675억 원)의 20%가 넘는 977억 원에 이르는 것이다. 한편 무상원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각 부처 직원들이 사용한 출장비용만 6억2000만 원에 달한다. 일부 부처에서는 원조를 직원들 해외 출장 명목으로 쓴 곳도 있다고 김 의원실은 전했다.

김 의원은 “부처별로 나눠먹기식 원조를 하다 보니 수혜국 입장에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최빈국들은 한국을 포함해 연간 1000건 이상 도움을 주는 나라 대표단을 만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작은 규모 예산으로 여러 부처가 경쟁적으로 나서다 보니 받는 쪽에서 ‘또 오느냐’며 오히려 난색을 표할 정도”라고 전했다.

원조 내용도 겹치기 일쑤다. 예를 들어 2009년 재정부 인천시 한국수출입은행 충남도는 모두 ‘공무원 초청 사업’을 중복 실시했다. 부처 관계자는 “공무원 초청 사업이 제일 쉽고 싸며 추후 감시 감독도 받지 않기 때문에 개도국 지원 사업으로 인기가 있다”고 전했다. 방통위와 행안부는 캄보디아 방송통신 전문가와 정보기술(IT) 전문가를 동시에 초청하는 사업을 하기도 했다.

베트남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 나라에 무상원조를 한 기관은 2009년 한 해 외교부를 제외하고 무려 22개 기관, 46억 원에 달했다. 이 중 재정부 인천시 충남도 한국수출입은행은 ‘공무원 초청 연수’ 사업을 중복 실시했다. 또 행안부와 경북도는 새마을운동 교육, 행안부와 부산시 방통위 여성가족부 등은 IT 전문가 초청사업을 똑같이 실시했다. 참여연대 ‘ODA 정책보고서’(2008년)에 따르면 2007년 복지부가 시행한 ‘해외 의료봉사활동 지원사업’ 등 개도국 지원사업도 KOICA의 ‘보건의료사업’과 중복된다.

현지에 봉사단을 파견하는 일도 해당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해 관리가 안 되고 있어 안전 문제까지 지적된다. 2009년 주베트남 대사관이 외교부 본부에 보낸 전문에 따르면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측이 파견한 해외 인터넷 청년봉사단은 2006년 KOICA 봉사단원 활동과 겹치는 데다 파견 단원의 연락처도 없어 안전관리가 미흡하고 사업 종료 후 평가 부분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또 최근 5년간 몽골에 대한 한국의 국제원조를 보면 교과부는 ‘개도국 교육정보화 지원 사업’, 농림부는 ‘축산물 개발 컨설팅’, 산림청은 ‘사막화 방지 사업’, 서울시는 ‘강 유역 개발’, 경기도는 ‘새마을운동 지원’ 등을 했지만 이 중 상당 부분은 내용이 겹친다.

주캄보디아 장호진 대사는 “외국의 경우 대사관 같은 재외공관을 중심으로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발굴과 선정 집행 및 평가 등 전 과정이 컨트롤되지만 우리는 어느 부처에서 누가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조차 파악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각 부처 및 지자체에서 도지사가 아는 현지 사람과 접촉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교회 사찰 등 종교단체를 비롯해 각종 비정부기구(NGO) 지원까지 합하면 알려지지 않은 원조 규모와 내용이 클 텐데 이게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이 안 되기 때문에 생색이 크게 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신의철 KOICA 소장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동안 외교부와 KOICA가 중심이 돼 해오던 원조사업에 각 기관과 부처들이 뛰어들면서 해외 원조가 일종의 유행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며 “부처마다 KOICA 해외봉사단원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베껴 파견하는 일이 잦다”고 전했다.

이렇게 지원되는 원조 내용과 규모는 OECD에 보고되지 않아 한국의 원조 규모가 실제보다 축소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KOICA 관계자는 “우리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작다고 하지만 컨트롤이 안 돼 난립하는 원조 액수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늘어나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깃발 꽂기 이제 그만

한국의 국제 원조가 생색내기에 머무는 ‘깃발 꽂기 원조(flag Aid)’ 형태로 시행된다는 지적도 많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 위주로만 국제 원조 사업이 기획 진행되는 것이다. OECD의 DAC 전문가 평가에서도 “한국은 단기간에 보여줄 수 있는 원조만 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다.

이를 반영하듯 개도국 사이에서는 한국 원조를 ‘5종 세트 원조’라고도 말한다. 학교 병원 IT센터 직업훈련소 등을 지어주고, 기념식 열고, 리본 커팅하고, 사진 찍고, 방치하는 한국형 원조를 비꼬는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한 민간 원조단체 관계자는 “한국 대표단이 올 때마다 ‘초등학교 지어주겠다’, ‘병원 지어주겠다’란 공약을 남발하는 바람에 받는 입장에선 한국은 정돈이 안 된 나라라는 이미지가 생겨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우물을 파놓고 방치하거나 의료기만 기증해 놓고 인력을 보내주지 않아 창고에서 썩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깃발 꽂기’ 원조는 당연히 ‘원조 효과’를 감소시킨다.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 봉사단원은 “한국은 베트남 캄보디아의 외진 시골 등에 수많은 병원을 건립해 왔지만 의사 파견 등 사후관리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병원 지어놓고 태극기 올리고 빠져버린다는 말이 현지인들로부터 나온다”며 “심지어 ‘장비 팔아먹으려고 온 것이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라고 말했다.

국제 원조 선진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의 경우 병원을 건립하기에 앞서 미리 지원할 지역 의대에 장학금을 기탁해 이곳에서 공부하는 의대생들이 졸업 후 5년간 스웨덴에서 건립한 병원에 근무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식으로 의료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ODA팀장은 “태극기만 휘날리는 과시성 사업을 하다 보니 실제 원조국에 도움이 안 되고 국가 위상 제고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놈펜(캄보디아)=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OECD 개발원조委… 한국 2009년 ‘주는 나라’ 정식가입▼

전 세계 부자국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회원국 중에서도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역량이 되는 나라, 즉 공적개발원조(ODA) 총액이 1억 달러 이상이거나 국민총소득(GNI) 대비 0.2%를 넘어야 가입할 수 있다. 한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했으나 그동안 DAC에 참가하지 못했었다. 한국은 DAC의 마이너리그 격인 옵서버 국가(방청국가)로만 참석해 오다 2009년 24번째로 정회원이 됨에 따라 DAC의 모든 의사결정에 정식 참여하고 있다. DAC가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인 것은 1999년 그리스에 이어 10년 만이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DAC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뿐이다. 한국은 서구식 개발 원조 방식이 주를 이루는 원조 논의에 한국식 개발의 관점과 경험을 제시하면서 DAC의 원조규범 논의 형성에 새로운 힘과 가치를 불어넣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약자로 공적 개발원조라고 번역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가난한 나라를 위해 돈이나 물품, 기술 등으로 도와주는 것으로 대가 없이 주는 무상원조와 장기저리로 돈을 빌려 주는 차관인 유상원조로 나뉜다.

::품앗이::

품을 서로 주고받으며 자립을 도와주는 한국 고유의 미풍양속이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한국의 ‘품앗이정신’을 세계적인 원조 브랜드로 키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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