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자동차, 모터 등에 사용되는 에나멜 권선(피복 절연전선)을 만드는 ‘화일전자’의 윤장혁 사장은 9일 “지금처럼 내년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는 기업 경영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환율 문제부터 유럽 재정위기, 북한의 돌출행동, 세계 경기회복 지연 등 여러 불안 요소가 동시 다발적으로 내년 기업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윤 사장은 “전에는 불확실성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예측은 고사하고, ‘상상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터지기 때문에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 일부 기업, 연간 사업계획 수립 포기
이처럼 경제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기업 10곳 중 8곳은 아직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은 아예 연간 사업계획 수립을 포기하는 대신 상황 변화에 대응하기 쉽도록 분기별 계획을 세우는 곳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망라한 국내 제조업체 280개사를 대상으로 11월 29일∼12월 1일 ‘2011년 사업계획 수립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1.4%가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9일 밝혔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한 곳은 18.6%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대한상의 관계자는 “환율 불안, 원자재가 상승, 유럽발 금융위기,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따른 북한 리스크 고조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의 83.9%가, 대기업은 78.8%가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불확실성을 더 높게 보는 것이다.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 바라는 정책 과제로는 조사 대상 기업의 45.0%가 ‘환율·원자재가 안정’을 꼽았다. 이어 ‘임시투자세액공제, 법인세 인하 등의 투자 관련 지원제도 유지’ 40.0%, ‘규제 완화 등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조성’ 7.9% 순이었다.
○ 위기 대응 자신감
국내외 불확실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매출 및 투자 목표에 대해서는 ‘상향 조정할 것’이라는 기업이 많았다. 내년 매출액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64.0%가 ‘올해보다 높게 설정하겠다’고 답했고, ‘비슷하게 유지할 것’, ‘낮게 설정할 것’이란 응답은 각각 29.6%와 6.4%였다. 내년도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서도 37.9%가 ‘늘리겠다’고 답한 반면 ‘줄이겠다’는 기업은 6.0%에 그쳤다. 56.1%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투자를 어느 분야에 집중하겠느냐는 질문에는 68.2%가 ‘기존 주력 사업 강화’, 16.1%는 ‘신성장동력 발굴’, 15.7%가 ‘신시장 개척 등 글로벌 경영 추진’을 꼽았다.
기업들이 매출 및 투자 목표를 늘려 잡는 이유에 대해 대한상의는 “우리 기업들이 지난 2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내면서 대내외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세계 어느 국가보다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북한의 기습적인 연평도 도발에도 경제는 거의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경제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기업은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도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유지와 법인세 인하 등의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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