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국 경제 60년사’ 발간…선진국 대열 오르기까지 일화 소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일 15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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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일 발간한 '한국 경제 60년사'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까지 겪은 시행착오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화들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우선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분주히 뛰었던 사례가 있다.

1994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PEC 회의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무역 및 투자를 완전히 자유화하는 내용을 발표하기로 하고, 자유화시기를 선진국은 2010년, 개도국은 2020년으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신흥개도국의 경우 2015년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당시 정부는 2015년이 되면 대만, 홍콩, 싱가포르도 모두 선진국이 되고 우리나라만 신흥국으로 남을 것으로 보고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2015년'이란 문구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정부는 1994년 11월 APEC 정상회의차 자카르타에 도착해 보고를 받았는데 '신흥국의 자유화 시기를 2015년으로 한다'는 범주가 정상회의 자료에 없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상회의 바로 전날 밤에 입수한 자료를 다시 보니 '2015년'이라는 범주가 포함돼 있자 새벽 1시 경였음에도 당시 수행하던 장관들을 모두 깨워 대책회의가 벌어졌다.

다음날 아침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러 정상을 틈이 나는 대로 만나 설득작업을 벌여 결국 '2015년'이라는 범주를 없앨 수 있었다.

이 책자는 "아마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정상외교를 한 적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아직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미진한 분야가 많으니 당시 APEC 회의에서의 우리 판단이 맞은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든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가 1950년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할 뻔했던 일화도 재미있다.

GATT에서는 1947년부터 독일과 일본을 포함해 한국이 GATT 체약국의 자격이 있느냐는 논의가 있었는데, 1949년 9월 한국이 자격이 있다고 결론짓고 1950년 9월부터 시작될 토케이라운드에 한국을 초청한 뒤 그해 12월에 개최된 GATT 이사회에서 오스트리아, 한국, 페루 등 6개국을 신규 체약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은 국내 비준절차가 완료되지 않았고 가입의정서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이후 몇 차례 GATT에서 서명기한을 연장했으나 결국 한국의 GATT 가입이 무산됐다.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 협상에서 여러 명의 관리들이 탈진했던 사례도 소개됐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 협상, 특히 시장 개방 협상은 우리나라에 큰 부담이었다.
당시 서비스 협상은 경제기획원에서 담당해 관련 공무원뿐 아니라 한국개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같은 국책기관들도 참여했다.

그리고 처음 하는 서비스 협상인 만큼 모든 협상 내용을 메모하고 나중에 이를 모두 녹취록처럼 재구성해 기록에 남겼다고 한다. 1990년 후반부터 진행돼 1993년말까지 거의 매달 진행된 서비스 협상을 모두 기록해 매번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남겨놨다.

이런 작업에 더하여 협상하러 가기 전에는 관계부처 회의, 협상 후에는 협상 결과 보고까지 준비해야 했으며, 거의 휴일이 없이 몇 년 동안을 협상에 매달려야해 도중에 몇몇 협상담당자들이 제네바에서 탈진해 응급조치를 받기도 했다.

1960년대 포항 종합제철소 건립 과정에서 남겨진 숱한 일화 중 대표적인 것으로'우향우 정신'과 '종이 마패'가 유명하다.

'우향우 정신'은 제철소 건설에 실패할 경우 당시 건설 현장 사무소인 '롬멜 하우스'에서 나와 우향우해 모두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는 불굴의 정신력을 상징하는 것이며, '종이 마패'는 제철소 공사의 책임을 고 박정희 대통령이 박태준 당시 포철회장에게 그 전권을 위임한다는 것을 기록한 것으로 정치권의 간섭과 이권 청탁을 철저히 배격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대우그룹의 실패 요인에 대해서도 이 책자는 언급했다.

대우는 과거 한국의 핵심 성공 요인이 정부 지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 경험을 살려 현지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세계 경영'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은 세계경제 호황 시에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으나 경제 위기 시에는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어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은 이 점에 충분히 유의하지 않았으며 대규모 차입 경영을 지속해 결국 좌초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책자는 '대일 무역적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 대일 수입은 우리나라의 전 세계 수출에 이바지함으로써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에 기여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또한 대일 무역적자로 인해 우리나라가 심각한 외화부족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라면서 향후 한일 경제협력에서 이 문제에 너무 얽매여 더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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