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줄서 배추 3포기 사고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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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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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염가판매 현장 르포

서울시가 배추값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을 위해 배추를 시중 가격의 70% 수준으로 판매한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1동 신원시장에는 800명이 넘는 시민이 몰렸다. 오전 6시부터 줄을 선 사람도 수십 명이었다. 일부 시민 사이에서는 배추를 사기 위한 몸싸움도 벌어졌다. 이날 이 시장에 공급된 배추 2670포기는 1시간 반 만에 모두 팔렸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시가 배추값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을 위해 배추를 시중 가격의 70% 수준으로 판매한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1동 신원시장에는 800명이 넘는 시민이 몰렸다. 오전 6시부터 줄을 선 사람도 수십 명이었다. 일부 시민 사이에서는 배추를 사기 위한 몸싸움도 벌어졌다. 이날 이 시장에 공급된 배추 2670포기는 1시간 반 만에 모두 팔렸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도대체 배추가 뭐기에….” 5일 오전 10시 50분경 서울 관악구 신림1동 신원시장 배송센터. 배추 2670포기를 앞에 두고 사람들이 두 줄로 서 있었다. 한쪽 줄에는 새벽부터 배추를 사기 위해 이곳을 찾은 ‘얼리 버드(Early Bird)’들이, 나머지 줄에는 허겁지겁 달려온 ‘지각생’들이 서 있었다. 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든 줄은 양쪽 모두 500m는 넘어 보였다.

“왜 새치기하냐”, “내가 언제 그랬냐”고 새치기 시비가 일었다. 줄을 서지 못한 사람들은 “같이 살자”며 고함을 질렀고 미리 와 느긋한 사람들은 “그러게 왜 늦냐”며 혀를 찼다. 모두들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이었다. 상인연합회 사람들은 “배추 때문에 싸우지 맙시다”라고 사람들을 다독이느라 애를 먹었다.

○ 시중 가격의 70% 수준서 판매

이날은 서울시가 배추값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을 위해 배추 1000t을 시중 가격의 70% 수준으로 판매한 첫날이었다. 자체 예산으로 경매가와 공급가 간 차액(30%) 및 운송비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싸게 파는 것. 송파구 가락동 서울시농수산물공사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배추 물량의 10%(약 45t)를 매일 사들여 20일까지 1차(16곳), 2차(15곳) 등 31곳에 공급하겠다는 것이 서울시 계획이다. 총 890망(1망에 배추 3포기)을 팔기로 한 신원시장은 ‘사재기’를 막기 위해 한 사람당 1망만 구입하도록 했다. 1망의 가격은 1만4000원. 경매가 1만8000원에서 30%를 할인하고 상가 수수료 10%를 더한 값이다. 이날 소매시장 가격은 2만4000∼2만6000원 선이었다.

드디어 오전 11시. 배추 판매가 시작됐고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느슨하게 줄 선 사람들은 먼저 사가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앞사람과 밀착하기 시작했다. 여덟 번째로 배추를 산 주부 김성신 씨(56·영등포구 신길동)는 “새벽 6시부터 기다렸다”고 말했다. 기쁨도 잠시. 그는 손에 든 배추를 차에 숨기고 다시 줄을 섰다. “김장 담그기 전까지 달랑 3포기 갖고 안 될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치가 안 나와서 손님이 뚝 끊겼다”는 한식당 주인 최순이 씨(60·동작구 상도1동)는 식당 종업원 3명을 데리고 배추를 사러 나왔다.

40분 만에 650망이 팔렸다. 직원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며 인원 파악을 했다. “240분은 배추 사실 수 있습니다”라는 직원의 얘기에 여기저기서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때다 싶어 뛰어든 한 할머니는 “먹고사는 데 체면이 무슨 소용이냐”며 웃었다.

○ 품질 떨어지는 배추까지 다 팔려

상인들은 877망을 판 이후 잎이 떨어지거나 다소 시들어 품질이 떨어지는 배추 13망을 1만 원씩에 팔았다. 시민들은 이것이라도 잡아보겠다며 달려들었다. 3분도 안 돼 다 팔렸다. 시민들의 배추 전쟁은 1시간 반이 지난 낮 12시 반이 돼서야 끝났다.

같은 시간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에서도 배추 판매가 진행됐다. 가격은 1망에 1만8000원. 배추 1750망(5250포기)이 1시간 반 만에 매진됐지만 신원시장과는 달리 분위기는 다소 순조로웠다. 시장 측이 처음부터 고객들에게 번호표를 주고 배추를 팔았기 때문. 이날 팔린 배추 대부분은 강원 정선, 태백, 평창 등 고랭지 지역이 원산지다. 서울시는 앞으로는 경기, 충청, 호남 지역 배추도 판매할 계획이다. 이광수 서울시 생활정책과 유통관리팀장은 “20일 이후가 되면 중국산 배추가 들어오면서 가격도 어느 정도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배추 2망 샀어요” 서울시의 배추 할인판매가 시작된 5일 시민들이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 앞에서 길게 줄 서 있다. 배추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이날 준비된 배추 5250포기는 1시간 반 만에 동이 났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배추 2망 샀어요” 서울시의 배추 할인판매가 시작된 5일 시민들이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 앞에서 길게 줄 서 있다. 배추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이날 준비된 배추 5250포기는 1시간 반 만에 동이 났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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