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배추가 뭐기에….” 5일 오전 10시 50분경 서울 관악구 신림1동 신원시장 배송센터. 배추 2670포기를 앞에 두고 사람들이 두 줄로 서 있었다. 한쪽 줄에는 새벽부터 배추를 사기 위해 이곳을 찾은 ‘얼리 버드(Early Bird)’들이, 나머지 줄에는 허겁지겁 달려온 ‘지각생’들이 서 있었다. 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든 줄은 양쪽 모두 500m는 넘어 보였다.
“왜 새치기하냐”, “내가 언제 그랬냐”고 새치기 시비가 일었다. 줄을 서지 못한 사람들은 “같이 살자”며 고함을 질렀고 미리 와 느긋한 사람들은 “그러게 왜 늦냐”며 혀를 찼다. 모두들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이었다. 상인연합회 사람들은 “배추 때문에 싸우지 맙시다”라고 사람들을 다독이느라 애를 먹었다.
○ 시중 가격의 70% 수준서 판매
이날은 서울시가 배추값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을 위해 배추 1000t을 시중 가격의 70% 수준으로 판매한 첫날이었다. 자체 예산으로 경매가와 공급가 간 차액(30%) 및 운송비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싸게 파는 것. 송파구 가락동 서울시농수산물공사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배추 물량의 10%(약 45t)를 매일 사들여 20일까지 1차(16곳), 2차(15곳) 등 31곳에 공급하겠다는 것이 서울시 계획이다. 총 890망(1망에 배추 3포기)을 팔기로 한 신원시장은 ‘사재기’를 막기 위해 한 사람당 1망만 구입하도록 했다. 1망의 가격은 1만4000원. 경매가 1만8000원에서 30%를 할인하고 상가 수수료 10%를 더한 값이다. 이날 소매시장 가격은 2만4000∼2만6000원 선이었다.
드디어 오전 11시. 배추 판매가 시작됐고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느슨하게 줄 선 사람들은 먼저 사가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앞사람과 밀착하기 시작했다. 여덟 번째로 배추를 산 주부 김성신 씨(56·영등포구 신길동)는 “새벽 6시부터 기다렸다”고 말했다. 기쁨도 잠시. 그는 손에 든 배추를 차에 숨기고 다시 줄을 섰다. “김장 담그기 전까지 달랑 3포기 갖고 안 될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치가 안 나와서 손님이 뚝 끊겼다”는 한식당 주인 최순이 씨(60·동작구 상도1동)는 식당 종업원 3명을 데리고 배추를 사러 나왔다.
40분 만에 650망이 팔렸다. 직원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며 인원 파악을 했다. “240분은 배추 사실 수 있습니다”라는 직원의 얘기에 여기저기서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때다 싶어 뛰어든 한 할머니는 “먹고사는 데 체면이 무슨 소용이냐”며 웃었다.
○ 품질 떨어지는 배추까지 다 팔려
상인들은 877망을 판 이후 잎이 떨어지거나 다소 시들어 품질이 떨어지는 배추 13망을 1만 원씩에 팔았다. 시민들은 이것이라도 잡아보겠다며 달려들었다. 3분도 안 돼 다 팔렸다. 시민들의 배추 전쟁은 1시간 반이 지난 낮 12시 반이 돼서야 끝났다.
같은 시간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에서도 배추 판매가 진행됐다. 가격은 1망에 1만8000원. 배추 1750망(5250포기)이 1시간 반 만에 매진됐지만 신원시장과는 달리 분위기는 다소 순조로웠다. 시장 측이 처음부터 고객들에게 번호표를 주고 배추를 팔았기 때문. 이날 팔린 배추 대부분은 강원 정선, 태백, 평창 등 고랭지 지역이 원산지다. 서울시는 앞으로는 경기, 충청, 호남 지역 배추도 판매할 계획이다. 이광수 서울시 생활정책과 유통관리팀장은 “20일 이후가 되면 중국산 배추가 들어오면서 가격도 어느 정도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