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이상직 이스타항공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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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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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년 축구狂… 경영도 체력-조직력 싸움”

밋밋한 비행기 내부 천장에 화려한 별들이 수놓인 우주나 한국 전통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를 그려 넣은 항공사가 있다. 1만9900원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를 갈 수 있는 파격적인 가격도 제시했다. 승무원들은 일반적인 기내 서비스 외에도 비행기 안에서 고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위바위보 게임을 통해 여행의 즐거움을 높여주기도 한다. 다른 항공사에서는 볼 수 없는 이 같은 특별한 서비스는 저비용항공사인 이스타항공이 제공하는 것들이다.

이스타항공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이상직 이스타항공그룹 회장(47)이다. 2009년 1월 7일 취항한 이스타항공은 이스타투자자문, 이스타벤처투자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보통 그룹이나 기업 총수들이 골프나 등산 등 비교적 정적인 운동을 취미로 하는 것과 달리 이 회장은 가장 동적인 운동인 축구를 20년 이상 해왔다. 그것도 평범한 ‘축구인(人)’이 아닌 지독한 ‘축구광(狂)’이다. 지금도 한 달에 2번 이상은 운동장에 나가 4∼6시간 공을 찬다. 이 회장은 경영자답게 “다른 운동도 모두 도움이 되지만, 시간과 비용 대비 운동 효과가 가장 큰 것이 축구”라고 강조한다.

○ ‘품격 축구’ 강조하는 ‘키카스’의 핵심

이 회장은 줄곧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인근 주민들과 생활축구(조기축구)를 해오다 2000년부터 ‘키카스(KIKAS)’라는 축구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키카스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제1, 2대 집행부에서 명예회장을 맡을 정도로 유명한 동호회다. 김정남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탤런트 주현, 선우재덕 씨를 비롯해 검사, 판사, 의사, 기업인 등 60여 명이 회원이다. 이 회장은 키카스에서 빠른 발을 이용한 핵심 공격수이자 축구 이외의 각종 모임에도 좀처럼 빠지지 않는 열혈 회원이다.

이상직 이스타항공그룹 회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축구공을 활용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축구광’인 이 회장은 요즘도 동호회 모임 때마다 6시간 정도의 경기를 거뜬히 소화해 내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상직 이스타항공그룹 회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축구공을 활용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축구광’인 이 회장은 요즘도 동호회 모임 때마다 6시간 정도의 경기를 거뜬히 소화해 내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그는 키카스에 대해 “품격 있는 축구를 하는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축구를 하다 보면 공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몸싸움도 많기 때문에 상대방은 물론 실수를 한 같은 편 선수에게도 욕설과 폭언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키카스에서는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키카스는 선수 1, 2명의 개인기에 의해 승리가 좌우되는 ‘동네 축구팀’이 아니라 탁월한 팀워크로 승리하는 팀”이라고 자랑했다.

○ 축구와 경영 일맥상통

규칙, 원칙, 매너 등을 강조하면서 조직력을 통해 승승장구하는 키카스의 성공 비결은 이 회장의 이스타항공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매년 전 직원이 참여하는 ‘한마음 전진대회’를 열어 결속을 다졌고, 이 과정에서 비전 공유를 통해 회사의 발전 동력을 확보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평균탑승률 85%로 항공사 가운데 탑승률 1위를 차지했고 저비용항공사 업계 시장점유율도 지난해 7월 이후 1위를 지켜오고 있다. 또 지난해 5월에는 한국소비자원이 주관한 ‘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기도 했다. 이스타항공의 모토도 ‘짜릿한 가격으로 추억을 파는 국민항공사’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이스타항공이 이용객들 사이에서는 ‘뜨고’ 있지만 항공업계와 이를 관할하는 정부 기관으로부터는 견제와 차별의 대상이 됐다”고 토로했다. 항공 분야의 가장 큰 원칙은 ‘많은 국민이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게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업계와 정부 관계자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지적이다. 저비용항공사만이 할 수 있는 파격적인 가격과 제안들이 묵살되기 일쑤였다는 것. 이 회장은 “또 다른 불이익을 받을까 봐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순 없다”며 “하지만 반칙으로 이긴 축구 경기가 나중에 들통 나 축구팬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처럼, 항공업계의 ‘반칙’도 곧 드러나 국민들로부터 호된 꾸중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흐름과 계기를 찾아내고 만들어내야”

한참을 ‘후발 업자의 설움’을 털어놓던 이 회장은 다시 운동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는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얼굴이 까맣게 그을릴 수밖에 없는데 골프장을 많이 다녀서 그런 걸로 오해하더라”며 “어떤 사람은 늘 자기만 빼고 골프장에 간다며 서운해하기도 해 5, 6년 전에 어쩔 수 없이 골프를 배웠다”고 말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골프 얘기를 꺼낸 것은 어떤 일을 추진할 때 ‘흐름’과 ‘계기’에 대한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은 “도전 정신을 갖고 일의 흐름을 찾아내고 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스타항공을 출범시킬 때도 임원들의 반대가 컸다. 하지만 앞서 저비용항공사가 성장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항공업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던 이 회장은 국내 대형항공사와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는 순수 저비용항공사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진 것을 계기로 이스타항공을 만들게 됐다.

그는 최근 말레이시아의 저비용항공사인 에어아시아 엑스가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면서 국내에 들어온 것을 예로 들며, 국내 항공업계에서 ‘반칙’이 횡행할 경우 자칫 외국 항공사에 주도권을 뺏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에어아시아 엑스 같은 세계적인 저비용항공사에 대항할 국내 저비용항공사는 이스타항공밖에 없다”며 앞으로 펼쳐질 이스타항공의 미래를 낙관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동영상=항공사 승무원이 옷을 벗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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