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영화 마니아’ 김태섭 케이디씨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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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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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커스감독 영화 전시회 보고 3D사업 눈 떠

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디씨그룹 본사에서 김태섭 회장이 3D용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고 있다. 김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갖게 된 영화감상 취미를 사업 아이디어로 살렸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디씨그룹 본사에서 김태섭 회장이 3D용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고 있다. 김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갖게 된 영화감상 취미를 사업 아이디어로 살렸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케이디씨그룹 김태섭 회장은 요즘 3차원(3D) 영화를 빼놓지 않고 찾아서 본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현재까지 국내에서 개봉한 10여 편의 3D 영화는 가리지 않고 모두 봤다. 회사 안에 아예 3D 영사 시설까지 갖춰 놨다.

일주일에 5, 6편의 신작 영화를 주말에 몰아서 소화하는 영화 마니아인 데다 3D 콘텐츠 사업을 그룹의 핵심 동력으로 키우고 있어서다. 흥미로 즐기는 개인적인 취미조차 사업 아이템으로 연결할 정도로 그는 철저한 최고경영자(CEO)다. 자녀의 유학 문제로 말레이시아에 간 이후로 얼마 전 13년 만에 처음 휴가를 떠난 김 회장이다. 지금도 추석 연휴조차 마음 편히 쉬지 못해 직원들보다 하루 먼저 출근하지만, 그도 팽팽한 정신적 긴장을 적당히 풀어줘야 했다. 그때마다 중학교 시절 김 회장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스타워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집에서 공상과학(SF)이나 호러 영화를 본다.

○ 불의의 사고가 빚은 인생의 우연

김 회장은 대학 재학 때까지만 해도 디스크자키(DJ)로 왕성하게 활동할 정도로 음악에 심취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당한 교통사고가 그의 취미와 일생을 바꿨다. 중국 시장이 덩샤오핑(鄧小平)의 개방 정책으로 본격적으로 외국 기업에 열린 1993년. 한국에 쌓인 의류 재고분을 한꺼번에 사들여 중국에 수출해 큰돈을 벌었다. 당시만 해도 패션산업이 미미했던 중국에서 한국 의류 재고품은 첨단 유행으로 인식됐다.

불과 3년 만에 매출액이 10배나 늘었을 때 김 회장은 운전기사와 단둘이서 다롄(大連)에서 단둥(丹東)으로 총 500km에 이르는 장거리 출장에 나섰다. 당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12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는데,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밤중에 무리하게 나선 게 화근이었다. 운전기사가 잠시 졸음운전을 하는 사이 트럭을 추돌하면서 깨진 유리창에 오른쪽 귀를 다쳐 청력을 잃었다. 김 회장은 “일정을 소화하려고 다음 날 붕대를 칭칭 감고 퇴원했다”며 “중국인 직원들도 독하다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다행히 왼쪽 귀는 멀쩡했지만 서라운드 음향을 들을 수 없어 평생의 취미였던 음악 감상을 포기했다. 대신 영화에 눈을 돌렸다. 두 귀로 음을 듣진 못해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이렇게 생긴 영화에 대한 관심과 취미는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사업에 대한 영감으로 이어졌다.

SF 영화 팬이던 김 회장이 2005년 SF 거장 조지 루커스 감독 등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쇼 웨스트’ 전시회에 참석하면서 마침내 3D의 세계에 눈을 뜬 것. 당시 ‘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영화 관람객 수가 현저히 줄자 미국 유명 영화감독들이 3D를 통해 영화계의 난국을 풀려고 했던 것이다.

김 회장은 쇼 웨스트 전시회를 샅샅이 둘러보면서 흑백 브라운관에서 컬러 TV로, 다시 액정표시장치(LCD) TV로 영상혁명이 일어난 것에 주목했다. 물론 당시 3D 제품군은 해상도나 입체감에서 조악한 수준이었지만, 디스플레이의 빠른 발전 속도를 비춰볼 때 조만간 실물과 근접한 3D 콘텐츠가 영화 및 방송 산업을 주도할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 전인미답의 도전 그리고 고난

2005년 본격적인 3D 사업계획을 세우고 투자를 받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영화 ‘아바타’ 개봉으로 3D 열풍이 불고 있는 현재와 달리 당시에는 3D라는 용어조차 일반인들에게 낯설었다. 게다가 2005년은 정보기술(IT)업계에 한파가 몰아닥치면서 구조조정에 내몰렸던 시기다. 투자자들은 한결같이 “3D 시대가 오겠느냐”며 고개를 돌렸다. 케이디씨 그룹은 3D 사업 이전에도 이미 네크워크 장비사업으로 국내 시장을 이끄는 등 탄탄한 사업기반을 갖춘 회사였다.

하지만 영사기부터 휴대전화, 태블릿PC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3D 제품 라인업을 구성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던 김 회장에게 중도 포기는 있을 수 없었다. 아직 3D 시장이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를 지속하면서 2006년까지 영업적자가 났고 주가마저 폭락했다. 업계나 지인들의 의심어린 시선에 괴로웠지만 김 회장은 뚝심으로 버텼다. 결국 2007년부터 3D 부문에서 흑자 반전에 성공했고, 지난해 270억 원에 이어 올해는 500억 원으로 매출이 대폭 늘었다.

케이디씨는 현재 미국 리얼디와 더불어 세계 3D 영화 시스템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현재 3D 상영시스템을 갖춘 극장 4000개 가운데 30%가 케이디씨 장비를 택했다. 특히 케이디씨는 3D 영사기뿐만 아니라 촬영장치와 3D LCD 양산에 필요한 각종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최근에는 세계 최초의 3D 태블릿PC를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김 회장은 “이제는 극장에서 끝나지 않고 가정까지 3D 열풍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3D 콘텐츠와 3D 디바이스로 이어지는 모든 가치 사슬을 만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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