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관리능력’ 은행권 희비 갈랐다

  • 동아일보

■ 시중은행 영업성적표 보니

“2분기 적자를 감수하고 1조4980억 원의 충당금을 쌓았습니다. 일각에서 ‘빅 워시(Big Wash·부실을 일시에 터는 행위)’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기업 재평가로만 6000억∼7000억 원의 충당금을 쌓아야 했습니다.”

어윤대 KB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3, 4분기에는 개선되겠지만 그렇다고 KB금융을 ‘클린뱅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당분간 인수합병(M&A)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지만 현재 KB금융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4일 주요 금융지주 및 은행의 2분기 성적표 공개가 마무리됐다. KB금융과 우리금융그룹은 울상인 반면 신한금융그룹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하나금융그룹과 기업은행은 “선방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고, 외환은행은 ‘작지만 강한 은행’을 입증하며 미소를 지었다.

○곤두박질친 KB금융의 실적


KB금융은 2분기에 3350억 원의 순손실을 내면서 은행권 꼴찌로 추락했다. 어 회장 말대로 나중에 떼일 것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충당금이 1조5000억 원에 육박한 탓이다. 그만큼 대출이 부실화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은행권에서는 “위기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사례”라고 말한다.

김은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감독원이 은행권 PF에 대한 일률적 검토에 들어가면서 KB금융이 PF 충당금을 일시에 많이 쌓았다”며 “이는 PF 대출의 질적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회사들이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기업 대출의 속도 조절에 들어갈 무렵 KB금융이 뒤늦게 뛰어들면서 대출 부실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강정원 전 KB금융지주 회장 직무대행 겸 국민은행장이 지나치게 단기 실적에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 회장은 부인하지만 “전임 CEO의 부실을 털기 위해 ‘빅 워시’를 한 결과”라는 지적도 적잖다.

실적 전망도 좋지 않다. 어 회장은 “하반기엔 PF 대출 쪽이 문제될 것 같다”며 “PF 대출 8조 원을 갖고 있는데 외부 컨설팅회사에 위험도를 실사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우리금융 역시 2분기에 1조1660억 원의 충당금을 쌓으면서 406억 원의 손실을 냈다. 분기 기준 적자는 파생상품 투자 손실이 있었던 2008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다만 자산규모는 331조3000억 원으로 KB금융(327조3000억 원)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표정 관리하는 신한금융


신한금융은 2분기에 5886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1분기보다는 24.5% 줄었지만 은행권 선두다. 상반기 순이익을 모두 합치면 1조3680억 원으로 작년 한 해 벌어들인 1조3053억 원을 넘어섰다. 금융권에서 ‘되는 집안은 신한밖에 없다’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다.

KB금융과 대조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한 것이 실적 유지의 배경이다. 어 회장마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신한금융이 리스크 관리 등에서 선제적 대응을 잘한다”고 평가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6월 말 발표된 구조조정 대상 16개 건설사 가운데 신한이 주채권은행을 맡는 건설사는 전무했다”며 “이번 기업구조조정을 통해 신한은행의 차별화된 리스크 관리 능력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 인수전에 뛰어든 하나금융의 순이익은 1분기보다 39.8% 줄어든 1808억 원이었다. 자산은 196조 원으로 300조 원이 넘는 우리, KB, 신한 등 ‘빅 3’와 100조 원 이상 벌어진 데다 기업은행(172조2000억 원)이 턱밑까지 추격해오고 있어 M&A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기업은행의 실적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정책적 필요에 따라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린 결과 충당금이 5379억 원으로 불었지만 순이익은 3069억 원으로 하나금융을 앞섰다.

외환은행 역시 기업구조조정의 여파로 순이익이 1분기 3182억 원에서 2분기 2109억 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상반기 실적을 합치면 5291억 원으로 KB금융(2377억 원)보다 배 이상 많다. 은행권 관계자는 “외환은행은 자산 기준으로 KB금융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몸집은 작아도 리스크 관리에 선제적으로 나서면서 수익성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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