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1000유로(약 147만 원)에 팔리는 와인이 국내에 수입된다면 판매가는 얼마쯤 될까? 그것도 앞으로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은 와인이라면? 지난해 포도 수확기 당시부터 ‘세기의 빈티지’가 될 것이라는 평가로 떠들썩했던 2009년산 보르도 와인이 올해 4월 와인 선물 시장인 ‘앙 프리뫼르(en primeur)’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주 로버트 파커의 평가가 공개됐다. 그는 무려 21개 와인에 100점에 준하는 점수(그는 98∼100, 97∼100, 96∼100점 하는 식으로 점수를 주기 때문에 100점이 들어간 점수대를 받은 와인이 21개라는 뜻)를 줬다. 100점 와인이 21개라는 이 전대미문의 평가는 “지난 32년간 보르도 와인을 평가한 이래 최고 빈티지”라는 그의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샤토 주인들에게 ‘세기의 빈티지’란 평가는 ‘세기의 매출액’이란 말과도 같다. 선물 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거래를 시작한 몇몇 작은 샤토들까지 2009년산 와인이 최근 좋은 평가를 받았던 2005년산보다도 비싸게 거래됐다고 전하고 있다.
보르도의 샤토들은 선물 시장에 자신들의 와인 전부를 내다 팔지 않는다. 좋은 평가를 받은 해의 와인일수록 소량씩 내놓으면서 가격을 올린다. 이들은 대개 파커의 점수 발표 이후에 거래 중개상인 ‘네고시앙’에게 가격을 제시하는데 와인 가격은 이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올해는 좀 더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 이달 말 홍콩에서 열릴 ‘빈엑스포 아시아 퍼시픽’이란 대형 호재 때문이다. 지금 보르도가 믿고 의지하는 대상은 중국, 홍콩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이다. 영국과 미국 시장의 파워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지만 이들 국가는 이미 성숙한 시장이라 아무리 빈티지가 좋은 와인이 나와도 극적인 가격 상승을 이끌어낼 요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홍콩에서 열리는 엑스포가 지나 봐야 거래 가격이 공개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보르도의 1등급 샤토의 2005년산 와인의 선물 시장 가격은 대략 300유로에서 시작됐다. 사상 최고의 빈티지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2009년산 와인이 이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출발할 리가 없다. 여기에 물량마저 빡빡하다면 가격 역시 ‘세기의 가격’이 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파커를 비롯한 다수의 영향력 있는 와인 전문가들은 엑스포가 끝나는 6월 초쯤 보르도 샤토들의 가격 발표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9월 즈음에는 1등급 와인의 ‘소비자 가격’이 1000유로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환상의 빈티지 출시 소식은 보르도 샤토의 주인들과 돈 많은 부자들 그리고 그해 기념하고픈 와인을 사려는 사람만 반가워할 것 같다. 주변의 많은 와인 애호가들은 가격 대비 좋은 와인을 찾아 마시는 지금의 수고 강도를 더 높여야 하지 않겠냐며 씁쓸해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면 된다. 게임은 어려울수록 흥미진진하지 않던가.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 이번 주의 와인 -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
1등급에 맞먹는 2등급 와인을 ‘슈퍼 세컨드’라고 한다. 슈퍼 세컨드 중에서도 순위를 매기자면 단연 선두를 차지하는 와인이다. 2009년산은 지난해 공사를 마친 최신 양조 시설에서 만든 첫 와인이라 더 의미가 깊다. 로버트 파커로부터 98∼100점이라는 최고 점수를 받고도 별 하나를 더 받았다. 같은 생테스테프 마을의 몽로즈도 96∼100점에 별을 받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