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통신 보조금경쟁, 다시 진흙탕 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자제선언 한달여 만에 “현금 42만원 주는 거 봤다”
SK브로드밴드, KT 신고
보조금 줄이면 타사로 이동

초고속인터넷을 신청하면 ‘현금 42만 원’을 준다거나 ‘12개월(1년) 무료’라는 식의 과도한 보조금 마케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KT와 ‘통합LG텔레콤’, SK브로드밴드 등 유선통신 3사가 최근 벌이는 과열 경쟁이다. 통신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해 말부터 앞 다퉈 지나친 보조금 지급을 줄이고 품질 경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뒤에선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본보 1월 27일자 B1면 참조
▶ “4개월 공짜로 보세요” 4개월뒤 해지 요청하자 “위약금 내세요”

10일 통신시장에선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초고속인터넷 3위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가 1위 사업자인 KT를 방송통신위원회에 경품고시 위반으로 신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KT가 소비자에게 1년씩 무료 이용 혜택을 주거나 현금 42만 원을 지급하는 걸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방통위는 통신사업자가 가입자당 연간 예상 이익인 15만 원 이상의 경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물론 SK브로드밴드나 통합LG텔레콤도 1년에 가까운 무료 이용 기간과 40만 원 상당의 경품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따라서 방통위가 시장의 과열 경쟁을 조사하기 시작하면 SK브로드밴드도 수억∼수십억 원의 과징금을 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SK브로드밴드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일을 벌인 건 경쟁을 버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는 SK텔레콤에 2008년 2월 인수된 뒤 여덟 분기 연속 적자 상태다. 지난해 1조8940억 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적자는 면치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에만 5591억 원을 쓴 ‘판매수수료’ 때문이다. 판매수수료는 가입자 유치에 사용되는 마케팅 비용이다.

국내 초고속인터넷 시장은 포화상태다. 통신 3사 모두 마케팅 비용 지출을 줄이고 기존 가입자를 잘 유지하는 게 이익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틈날 때마다 출혈 경쟁을 벌인다. 이는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커진 대리점 유통망 탓이다. 통신사들은 초고속인터넷 시장 초기에 소비자 대상으로 직접 영업을 하는 대신 개인사업자에게 가입자 유치 업무를 위임하고 통신료 일정액을 수수료로 나눠줬다.

이렇게 생긴 수많은 통신 대리점들은 개인사업자라 특정 통신사에 대한 충성도가 그리 높지 않다. 한 통신사가 대리점 보조금을 줄이면 바로 자신들이 유치한 가입자와 함께 다른 통신사로 옮겨간다. 따라서 통신사는 대리점 보조금을 줄일 수 없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금 모든 통신사들은 진흙탕 같은 유통망의 수렁에 빠져 있다”며 “헤어 나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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