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貨 ↓ 국가신용 ↓… EU ‘그리스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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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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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내 GDP 규모 3% 그리스 부도위기에 유럽경제 혼돈

‘통화 통합’의 부작용 드러나
회원국 중 국가부도 발생땐 유로존 전체가 위기에 빠져

유럽 미래 결정짓는 변수
그리스 재정개혁 미흡하면 글로벌 금융불안 번질 수도


그리스의 재정위기로 시작된 유럽 금융시장의 불안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태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말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하면서 불거진 그리스 위기는 좀처럼 뚜렷한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국가부도 위기에 빠진 그리스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유로화 및 유럽연합(EU)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리스의 재정불안이 해결되지 못하고, 스페인 이탈리아처럼 비슷한 문제가 있는 유럽의 이웃나라로 번져 유럽의 금융기관이 흔들리면 국내 시중은행들도 타격을 받게 된다. 국내 시중은행들의 대외 금융거래에서 유럽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의 재정이 방만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유로존 편입으로 꼽는 분석도 있다. 원래 물가상승률 및 금리 수준이 서유럽 선진국보다 훨씬 높던 그리스가 유로화를 쓰게 되면서 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진 것. 자금조달 비용이 싸지자 민간과 정부는 모두 외자도입을 크게 늘렸고 민간과 정부 지출은 방만해졌다.

유럽 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는 지난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12.7%에 이른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인 유로존 평균(6.4%)의 약 두 배다. 그리스의 정부부채 비율도 GDP의 112.6%로 이탈리아(114.6%)와 함께 유럽 최고 수준이다.

그리스발 위기는 유로화도 흔들고 있다. 지난달 15일 1.45달러였던 유로화 환율은 2일 현재 1.38달러 수준까지 떨어져 유로화 가치가 5%나 급락했다.

유로존 전체 GDP에서 그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로 미미하다. 그런데 왜 그리스의 위기를 전 세계가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는 것일까.

1999년 출범한 유럽경제통화연맹(EMU) 체제가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도 못했는데 회원국 가운데 국가부도가 발생할 경우 EMU 자체가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또 그리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비슷한 상황의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로 위기가 번져 유럽 경제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스 위기의 근본 원인은 그리스 상품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져 무역적자가 쌓여가도 정부가 자국의 통화가치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국 통화를 포기하고 유로화를 도입한 탓이다. 오히려 최근 몇 년간 유로화 가치가 오르면서 그리스 제품의 수출경쟁력은 더 많이 떨어졌다.

그리스 산업구조가 관광 등 서비스 업종에 편중돼 경기변동에 민감하고 경기침체 시에는 세수가 더욱 부진해지는 구조도 문제다. 그리스의 제조업 비중은 10.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반면에 서비스업은 75.9%로 최상위권이다. 사회보장 관련 지출이 GDP 대비 18%로 OECD 평균(15.2%)보다 높은 것도 정부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

만연한 부정부패와 납세자의 조세회피도 유로 회원국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그리스에서는 작은 식당 하나를 열기 위해서도 공무원에게 1만 유로 이상의 뇌물을 건네야 하고 개업 후에도 뇌물상납 없이는 제대로 영업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아파서 공공 의료기관에 갈 때도 그리스인들은 별도의 돈 봉투를 의사에게 건네야 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그리스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25%로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이처럼 세수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그리스는 2004년 이후 각종 세율을 대폭 인하해 재정위기를 부채질했다.

그리스 정부는 올해 적자규모를 GDP 대비 8.7%까지 줄이고 재정적자도 2012년 말까지 3% 이내로 축소하겠다는 내용의 3개년 계획안을 EU에 제출했다. 하지만 현 그리스 정부가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EU 국가들도 그리스 지원을 놓고 각자 계산기를 두드리며 손익을 계산하고 있다. EU는 당장은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계획을 밝히지 않으면서 그리스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EU집행위원회는 그리스 중앙정부에 정부기관 등의 임금을 삭감하고 세금 징수체계 개선을 요구하는 권고안을 전달할 계획이다. EU 재무장관회의는 16, 17일 그리스의 재정적자 감축안의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박진호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과장은 “EU가 그리스 정부에 적정한 개혁안을 가져오라고 압박하고 있다”며 “그리스의 재정개혁 수준이 미흡하다면 유럽발 금융불안이 계속될 것이고 재정개혁 수준이 설득력 있다면 EU에서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안정되는 수순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리스는 작은 나라이지만 비슷한 문제가 있는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그리스 문제 해결이 유로화 및 유럽의 미래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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