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안테나 달린 옛날TV 돌아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7일 03시 00분


《1960, 70년대 TV가 사치품이던 시절, 마을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이들을 웃기고 울렸던 일명 ‘배불뚝이 TV’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LG전자는 12월 브라운관 TV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클래식 TV’를 선보인다. 이 TV에는 옛날 TV에서 채널을 돌릴 때 쓰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다이얼이 달려 있다.
또 안테나와 다리도 달렸고, 영상을 흑백으로 감상할 수 있는 ‘흑백 모드’ 기능도 갖췄다.》

LG전자가 12월 선보일 ‘클래식 TV’(왼쪽)와 이 제품의 포장상자. 클래식 TV는 옛날의 브라운관 TV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고 디자인을 현대식으로 바꿨다. ‘사용하기에 재미있는(fun to use)’을 모토로 내건 포장상자는 수납상자로 재활용할
수 있다. 클래식 TV는 14인치로 가격은 20만 원대. 사진 제공 LG전자
LG전자가 12월 선보일 ‘클래식 TV’(왼쪽)와 이 제품의 포장상자. 클래식 TV는 옛날의 브라운관 TV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고 디자인을 현대식으로 바꿨다. ‘사용하기에 재미있는(fun to use)’을 모토로 내건 포장상자는 수납상자로 재활용할 수 있다. 클래식 TV는 14인치로 가격은 20만 원대. 사진 제공 LG전자
LG전자 12월 출시… ‘디지털 가전에 아날로그 입히기’ 유행
아이리버 전자책은 파일 바인더에 담아… 기능만큼은 첨단


대신 디자인과 기능은 현대식으로 바꿈으로써 브라운관 TV를 재해석했다. 채널 변경 방식은 다이얼의 오른쪽을 누르면 채널 번호가 올라가고, 왼쪽을 누르면 채널 번호가 내려가는 ‘조그 휠’ 방식이다. 요즘은 채널이 수십 개에 이르러 다이얼을 일일이 돌리는 방식으로는 힘들다는 점을 감안한 것. TV의 색상은 빨강 또는 검정이다. 디지털 튜너도 내장해 2012년 디지털방송이 전면 시행돼도 셋톱박스 없이 디지털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이 제품을 미리 본 일부 소비자는 ‘감각이 좋다’ ‘(LG의 옛 브랜드인) Gold Star 상표를 붙이면 재미있겠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크기는 14인치로 가격은 20만 원대.

클래식 TV처럼 최근 전자업계에서 디지털 기기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어넣는 움직임이 도드라지고 있다. 첨단 기술, 기능을 구현하면서도 디자인과 외관은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가미해 제품 자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단순한 아날로그 마케팅과는 차별되는 대목이다.

○ 클래식 디자인… 아날로그의 귀환

세계 TV 시장 2위인 LG전자가 한물간 브라운관 TV의 신제품을 내놓는 것은 앞으로 기술 경쟁뿐 아니라 감성 경쟁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TV 화질의 차이가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단계로 올라서면서 기술 경쟁이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이우경 LG전자 한국 홈엔터테인먼트(HE) 마케팅팀장(상무)은 “클래식 TV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모던한 느낌이 나는 게 특징”이라며 “신혼부부나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의 명품 가전업체인 뱅앤올룹슨의 TV인 ‘베오비전 9’은 TV 전원을 켜면 그래픽으로 처리된 검은색 커튼이 걷히면서 TV 화면이 보이게 했다. 소비자에게 1900년대 초반의 극장 앞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을 주기 위해서다. 끌 때에도 검은색 커튼이 TV 화면을 덮는 방식으로 꺼진다. 이와 함께 TV는 마치 미술관의 바닥에 놓인 큰 액자처럼 만들었다. 피터 피터슨 뱅앤올룹슨 혁신담당 전무는 “소비자들이 TV를 때로는 극장처럼, 때로는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 딱딱한 이미지 벗은 전자책

다른 전자 기기에도 아날로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아이리버의 전자책 ‘스토리’는 두꺼운 도화지 재질의 파일 바인더에 담겼다. 전자책을 꺼낼 때 학생들이 파일 바인더에서 종이책을 꺼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박스를 뜯어서 제품을 꺼내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셈. 유영규 아이리버 디자인총괄 이사는 “전자책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유발해 딱딱한 전자제품의 이미지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푸스의 카메라인 ‘펜(PEN)’은 언뜻 보면 호주머니에 부담 없이 넣고 다니는 ‘똑딱이 카메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1230만 화소, 4000분의 1인 셔터 속도 등 최신 디지털렌즈교환식(DSLR)의 기능을 갖췄다. 팬택 계열의 ‘스카이 듀퐁폰’은 휴대전화 윗면을 고급 라이터 뚜껑처럼 만들어, 뚜껑을 열고 닫는 것으로 잠금 기능을 쓸 수 있도록 했다.

○ 21세기 화두는 디지털 휴머니즘

윤부근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은 9월 독일에서 열린 전자전시회인 ‘IFA 2009’에서 전자산업의 새 화두로 ‘디지털 휴머니즘’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이 전시회에서 첨단 기술을 설명해야 할 기조연설을 통해 울릉도 출신인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날로그적으로 소개해서 큰 관심을 받았다. ‘섬마을에 살던 소년이 있었다. 마을마다 전화가 하나밖에 없던 시절, 전화 왔다고 소리치는 게 그 소년의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어주는 것은 감성이었다’라는 것. 윤 사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세상이 바뀌었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성”이라고 강조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