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8월 14일 02시 5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국제 상품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가공식품과 농축산물 가격이 동반 상승해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거리고 있다. 곡물 가격 상승세로 물가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이 가시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설탕 재료인 원당(原糖)의 10월 인도분 선물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4.79% 오른 1파운드(lb)당 22.97달러를 나타냈다. 이는 작년 말보다 72.7% 오른 것이다. 올해 20% 가까이 가격이 폭락했던 밀과 옥수수의 12월 인도분 선물가격도 이날 1% 이상 올랐다. 식용유를 만드는 데 쓰는 대두(콩) 선물가격도 0.53% 올라 올 들어 4% 가까운 상승세를 이어갔다.》
○ 설탕, 식용유 등 가공식품 가격 급등
국제 곡물 가격이 요동침에 따라 곡물을 수입해서 만드는 가공식품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추세다.
CJ제일제당은 국제 원당 가격 급등을 반영해 17일부터 설탕 가격을 평균 8.9% 올리기로 했다. 설탕의 올해 1∼7월 평균 가격은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0% 상승한 상태다.
같은 기간 밀을 재료로 하는 부침가루는 11.3% 올랐고, 대두가 주원료인 식용유는 16.3% 상승했다. 다른 제품의 상승률도 △라면 4.3% △국수 7.1% △비스킷 26.1% △빵 7.7% △두부 4.7% 등으로 한국은행이 2007∼2009년 연평균 물가상승률 목표치로 삼고 있는 2.5∼3.5%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수입 원료를 이용한 가공식품뿐 아니라 국내 농산물 가격도 많이 올랐다. 올해 1∼7월 쌀값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 상승했고 상추와 오이는 20%대의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곡물 가공식품과 농산물 가격이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내외로 크게 높지 않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품목들이어서 체감 물가에 큰 영향을 주고 공산품 가격 상승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 3∼7개월 시차 두고 가격 상승
최근 곡물 가격이 오르는 것은 지난해 겨울 중국과 남미 국가가 심각한 가뭄을 겪으면서 올해 곡물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대체에너지 자원으로 각광받는 옥수수의 경작 면적이 늘면서 다른 곡물의 경작이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국제 곡물 가격이 3∼7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국내 가공식품 가격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곡물가격 상승세가 연말 이후 가공식품 가격을 또 한 차례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 가격은 원료 수입 후 가공 단계를 거쳐 몇 개월 뒤에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식용유의 원료인 대두 가격이 국제 상품시장에서 30% 오르면 몇 달 뒤 식용유 소비자 가격은 7.4% 정도 오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남미 국가 등에 이상 기후를 불러오는 엘니뇨가 최근 발생하면서 이들 국가의 곡물 생산량이 연말에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성명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산업팀장은 “기상 이변으로 주요 경작국들의 생산이 줄면서 계속 가격이 오를 여지가 있다”며 “달러화 약세도 곡물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라고 말했다.
○ 정부 ‘생활 물가’ 관리 나서
전문가들은 비록 정부가 발표하는 지표 물가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의 농축산물과 가공식품 물가 상승이 서민들의 생활과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에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6%로 9년 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이를 피부로 체감하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국내 가공식품의 가격이 대거 인상된 데 따른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공공요금과 교통요금 등 생활 물가가 곳곳에서 들썩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올해 안에 일부 가공식품과 공산품의 판매가격을 공개하고 공공요금의 원가도 홈페이지에 공개할 계획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당장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는 게 사실”이라며 “원자재 가격과 공산품 가격이 오르는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조어.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전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