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병원 대신 약으로 버틴다

  • 입력 2009년 6월 9일 18시 05분


동아제약의 종합감기약인 '판피린큐' 영업팀은 최근 1분기(1~3월) 실적을 확인하고 두 눈을 의심했다. 매년 감기약 비수기로 생각하던 1분 실적이 지난해보다 96.7% 늘어났기 때문이다. 동아제약은 "지난해부터 영업 방식을 도매 위주로 바꾸긴 했지만 이런 실적 상승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감기 같은 가벼운 병에 병원을 가는 대신 약을 먹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침체의 여파가 서민들의 '감기 치료'에도 영향을 미쳤다. 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감기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줄어든 반면 주요 종합감기약 제조 회사의 매출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심평원이 최근 발표한 '2009년 1분기 진료비통계지표'를 살펴보면 감기로 병원을 찾은 진료인원은 1410만 명, 진료비용은 4296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 비해 각각 1.7%와 2% 줄어든 수치다. 심평원 측은 "감기 관련 진료가 줄어든 것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반면 제약을 포함한 전체 진료 금액은 지난해보다 8.7% 늘었다. 병원을 찾은 감기환자가 줄어든 대신 제약업계의 감기약 매출은 상승했다. 판피린큐뿐만 아니라 감기약 부분 시장점유율 1위(35%)인 동화약품공업의 '판콜에이'는 7.6%, CJ제약사업부의 '화이투벤'은 66% 성장했다.

판피린큐 영업을 담당하는 엄상섭 과장은 "매출 상승 이유를 약국에 설문해본 결과 경기 침체가 가장 큰 이유였다"며 "예전 같으면 병원에서 진료 받고 주사 맞던 사람들이 최근에는 그마저 부담을 느꼈는지 약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기 진료로 병원에 갈 경우 소비자가 부담하는 돈은 5000원 선. 감기약은 3000원 가량에 5일 복용할 수 있어 지갑이 얇아진 서민들이 약국을 찾는다는 뜻이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매출이 늘어나 좋은 일이지만 1000원, 2000원에 병원을 가지 않는 불황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박재명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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