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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29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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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공사 입찰서 제출이 대학 입학원서 낼 때 눈치작전을 벌이는 수준입니다. 타사가 얼마를 썼는지, 원가를 절감하는 공법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 마감시간 직전까지 30개 가까운 공정별 금액을 계속 수정해 가까스로 내고 있습니다.”(A건설사 영업팀 관계자)
민간 건설시장과 해외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건설사들이 국내 공공공사를 따내기 위해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낙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막판까지 견적서를 고치느라 마감시간을 넘겨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사고가 자주 벌어지는 것도 올해만의 현상이다. 5월에도 제주국제영어마을 등 2개 공사에서 5곳 안팎의 건설사가 마감시간 초과로 입찰서를 못 낸 것으로 알려졌다.
B건설사 영업팀 관계자는 “타사 동향 파악은 영업팀 일부 직원만 맡았는데 요즘은 기술자를 비롯해 회사 내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내 공공공사가 생명줄
28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26일까지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금액은 모두 114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20억 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민간 건설공사 규모(수주액 기준)가 62조4000억 원으로 지난해(90조8000억 원)보다 31.3%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늘리면서 올해 국내 공공공사 규모는 54조50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46.9%나 늘었다. 공공공사는 리스크가 없는 데다 선급금이 현금으로 지급돼 건설사들에는 ‘생명수’와 같다.
이에 따라 각 건설사들은 공공공사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우건설은 올해 수주 목표액을 2조1957억 원으로 정해 지난해보다 4600여억 원 늘렸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도 지난해(1조8000억 원)보다 5000억 원 이상 더 수주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GS건설 역시 수주 목표액(1조7765억 원)을 지난해보다 5600여억 원 높게 잡았다. 영업팀은 물론이고 견적팀, 설계팀 등의 인력도 늘리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영업팀 관계자는 “대한주택공사, 도시개발공사가 발주한 공사는 이윤이 적어 평소 관심을 갖지 않던 대형사들이 올해는 입찰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 내년에 물량 줄어, 올해 최대한 따야
건설사들은 상대적으로 이윤이 많이 남는 턴키(일괄입찰)공사의 평가를 맡는 교수, 연구원 등 전문가 풀에 대한 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한 건설사 영업팀 관계자는 “대학, 연구소 방문은 기본이고 조찬모임과 세미나에도 참석해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맞추려 한다”고 말했다. 영업팀 이외 부서의 직원들도 전문가들과 학교 선후배 등의 인연이 약간이라도 있으면 찾아다니고 있다.
민간부문이나 해외건설 경기가 살아날 가능성이 불투명한 가운데 내년에는 공공공사 물량이 15%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경쟁을 가열시키는 요인이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내년과 내후년 공사 물량을 당겨서 발주하고 있는 만큼 올해 수주하지 못하면 2년간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따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