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 이것이 달라졌다]아모레퍼시픽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의 실적을 책임지고 있는 지정판매 체인점 ‘아리따움’. 지난해 9월 첫선을 보인 아리따움은 현재 전국에 950개 매장이 있다. 사진 제공 아모레퍼시픽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의 실적을 책임지고 있는 지정판매 체인점 ‘아리따움’. 지난해 9월 첫선을 보인 아리따움은 현재 전국에 950개 매장이 있다. 사진 제공 아모레퍼시픽
방문판매서 체인점까지… 유통혁신 64년

“여성이 행복해지는 사회로” 한 길
‘아리따움’ 950곳 충성고객 북적
사회공헌 금액 70% 여성복지 투자

“함께 피란길에 오른 여공들과 오전 5시 반부터 밤 11시까지 피곤한 줄 모르고 일을 했다. 화장품 몇십 개를 밤새도록 새끼줄로 묶어 포장하다 보면 손바닥이 불에 덴 듯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즐거웠다.”

광복과 전쟁으로 이어지던 혼돈의 1950년대, ‘메로디 크림’과 ‘ABC 포마드’로 대박의 기쁨을 맛본 고(故) 서성환 태평양 회장은 당시를 이와 같이 회고했다. 어려웠던 시절, 그만큼 어렵게 탄생한 두 제품에는 서 회장의 애착뿐 아니라 ‘폼생폼사’를 외치던 한국 멋쟁이들의 낭만도 깃들어 있다.

그로부터 또 다른 반백년이 지난 지금 태평양은 ‘아모레퍼시픽’이라는 새로운 간판 아래 그 성공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샤넬 등 쟁쟁한 해외 유명 브랜드들을 제치고 연매출 5000억 원을 기록한 ‘설화수’와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도 쓴다는 프리미엄 제품 ‘아모레퍼시픽’, 국내보다 중국 홍콩 일본 등에서 더 인기 있는 ‘라네즈’ 등이 그 주인공이다.

○ 64년 장수의 비결… ‘유통 혁신’

1945년 ‘태평양상회’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서 회장은 화장품 성공의 지름길은 시장과 판매라고 믿었다. 이에 따라 태평양은 사업 초기부터 세분화되고 독자적인 유통 경로 확보에 공을 들여왔다.

1956년 세운 미용재료상 ‘화성사’가 그 시작이다. 서 회장이 미용기술학교이자 태평양화장품 등 각종 미용재료를 팔던 화성사에 기대했던 것은 실수입보단 ‘입소문’이었다. 당시 뷰티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발사와 상인 등 이른바 ‘여론 주도층’들을 한자리에 모아 자연스레 태평양 제품을 홍보하려는 목적이었다.

1964년 시작한 ‘여성 방문판매제도’는 보수적이던 당시 사회 분위기로선 혁명에 가까운 전략이었다. 당시만 해도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았던 터라 지역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면장 부인이나 고학력 여성을 위주로 판매원을 뽑았다. 교육을 통해 미용 기술과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한 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자 곧 매출 증가와 브랜드 이미지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현재에도 방문판매는 아모레퍼시픽 실적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기준 3만3000명에 달하는 이들 여성 판매원 ‘아모레 카운슬러’가 관리하는 고객만 300만 명이고 이들의 지갑에서 5300억 원이 나왔다.

유통 혁신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통했다.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꾸준히 호황 시절 실적을 유지 중인 아모레퍼시픽이 인정하는 성공 비결은 ‘아리따움’. 아리따움은 아모레퍼시픽 제품만 판매하는 지정판매 체인점으로 지난해 9월 첫선을 보였다. 단순한 화장품 가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고객들의 피부 고민에 대한 전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회사에 대한 고객들의 사랑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보인다는 평가에 힘입어 아리따움은 지난해 말 전국 890개 매장에서 올해 4월 950개로 늘었다.

○ 또 다른 한 세기를 위해, 지속 가능 경영

‘여성에게서 받은 사랑을 여성에게 되돌려준다.’ 아모레퍼시픽이 매년 사회공헌 금액의 70%가량을 여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 사업에 투자하는 이유다. 앞으로 계속 장수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2000년 아모레퍼시픽은 모성과 여성성의 상징인 유방을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국내 최초 유방암 전문 비영리 공익재단인 한국유방건강재단을 만들었다. 이 재단이 2001년 유방암에 대한 예방의식을 고취하고자 시작한 ‘핑크리본사랑마라톤대회’는 올해로 9년째. 수익금 전액을 유방암 예방과 치료법 개발에 기부한다.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는 암 치료 과정에서 생기는 외모 변화로 고통받는 여성 암 환자들에게 화장과 피부 및 머리 관리법 등을 전수하는 캠페인. 바뀐 외모를 통해 자신감과 재활 의지를 북돋운다는 취지에서다.

이 밖에도 ‘어머니가정 홀로서기 도우미’ 사업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에게 생계비와 창업기금을 지원한다. 2005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함께 만든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은 한국 최초 우주인인 이소연 씨가 수상해 화제가 됐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여성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기업도 사회도 산다는 게 기본 경영 철학”이라며 “여성이 겪는 사회적 문제부터 문화와 환경 문제로까지 관심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아모레퍼시픽 약사(略史)

-1945년 ‘태평양’ 창업

-1948년 첫 제품 ‘메로디 크림’ 출시

-1954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연구실 개설

-1964년 여성방문판매제도 도입

-1971년 한국 최초 메이크업 캠페인

‘오마이러브’ 진행

-1997년 최초 한방 명품 브랜드 ‘설화수’ 출시

-2006년 경희대 한의과대학과 협력해 국내

최초로 한방미용연구센터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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