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한국의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4분기보다 소폭 성장하며 1분기 만에 플러스로 반전했다. 하지만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을 냈다. 설비투자와 제조업 생산 등 핵심 실물지표들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어 일각에서 제기된 ‘경기 바닥론’은 섣부른 판단이었음이 확인됐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2009년 1개 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에 따르면 1분기 한국 경제는 전기 대비 0.1% 성장해 지난해 4분기 ―5.1%의 역(逆)성장 이후 1개 분기 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전년 동기 대비로는 4.3%나 감소해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4분기(―6.0%)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설비투자 침체 지속… 건설 등은 ‘부양’ 효과
세계경제 불안요소 많아 회복속도 더딜듯
○ 정부 경기부양이 급격한 하락 막아
1분기 성장률이 전분기보다 소폭이나마 플러스로 돌아선 데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 효과가 컸다. 부문별로 보면 설비투자는 1분기 ―9.6%로 지난해 4분기(―14.2%)에 이어 극심한 침체를 보였고 제조업 생산도 3.2% 감소했다. 하지만 정부소비는 전기보다 3.6% 늘었고 건설투자는 5.3% 증가했다. 건설업 생산 역시 토목건설을 중심으로 6.1%나 늘었다. 최춘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정부가 예산을 조기집행하고,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예산을 작년보다 16%나 늘리는 등 대규모 건설 투자를 한 효과가 컸다”고 설명했다.
서비스업과 민간 소비도 소폭이지만 플러스로 돌아섰다. 최 국장은 “서비스업에서는 주가 상승으로 인해 금융업종의 성과가 좋았고 중소기업 대출과 보증을 늘린 것이 경기의 추락을 막았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지금은 패닉 상태에 빠진 민간부문이 자생적으로 올라오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럴 때 정부가 경기부양의 방아쇠(트리거)를 당겨준 게 바람직한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 “바닥 지나도 체감은 어려울 것”
1분기 성장률이 플러스를 나타내면서 ‘경기 저점(바닥)’이 언제쯤일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기순환론에 따른 경기 저점은 경기가 침체를 벗어나 회복되기 직전의 시점으로, 정확한 판단은 일반적으로 2, 3년이 지난 뒤 ‘사후적’으로만 가능하다.
한은은 잠재성장률의 회복을 저점 판단의 기준으로 여긴다. 분기 GDP 성장률(전기 대비)이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이 돼야 사후적으로 직전 분기를 경기 저점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최 국장은 “한국의 연간 잠재성장률을 4% 내외로 봤을 때 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이 최소한 1%가량 나와야 저점을 통과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1분기 GDP가 플러스(0.1%)로 돌아선 것을 두고 경기 저점 신호로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경기 저점이 상당기간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천 한은 조사국장은 “저점이 올해 하반기일 수 있겠지만 회복 속도가 상당히 느려 경제주체들이 피부로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경기 저점이 큰 의미를 갖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책 담당자들이 경기 저점이 임박했다고 판단해 정책방향을 바꾼다든지, 경영자들이 경기회복을 확신하고 무리한 투자에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이처럼 한은이 경기바닥론을 경계하는 것은 경기에 대한 판단이 한은 통화정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경기 저점이 확실하면 유동성 회수에 나서야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면서 “당분간은 유동성 완화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어떤 식으로 회복되느냐가 더 중요
상당수 민간 전문가들도 경기가 저점을 찍더라도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에서 1.5%로 낮췄다. 권순우 실장은 “여전히 국제 금융시장 곳곳에 불안 요인이 널려 있어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면서 “현재 한국 경제는 바닥을 확인해가는 과정이며, ‘바닥이 정확히 언제냐’보다 ‘경기가 어떤 방식으로 회복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닥이 넓은 U자형’ 또는 ‘L자형 장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이 강도 높게 진행될 경우 고용이 악화되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한국 경제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이른바 ‘더블 딥(double dip)’에 대한 경계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원은 “2분기까지 전기 대비 플러스 성장률이 나오더라도 다시 경기가 급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일시적인 정부 지출에 따른 ‘모르핀 효과’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최소 3분기까지 성장률을 지켜봐야 향후 경기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