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사기꾼들이 온라인게임세상 접수?

  • 입력 2009년 4월 6일 19시 24분


"전하! 온라인 게임 세상의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다고 하옵니다."

"무슨 일이더냐."

"밤이고 낮이고 조직폭력배 무리가 출몰해 땀 흘려 게임하는 백성들의 재산(아이템)을 수탈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당해낼 수 없는 착한 백성들이 뒤따라 조폭으로 나서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 하옵니다."

"이런 고얀 놈들을 당장 이 땅에서 추방하라."

엔씨소프트의 온라인 게임인 '아이온' 세상 속에서 얼마 전부터 벌어진 일입니다. 자동으로 게임을 진행해주는 '오토 프로그램'은 상대방을 속이고 아이템을 가로채는, 온라인 게임세계의 조폭 같은 존재입니다. 이걸 쓰면 게임 능력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반칙을 하지 않는 일반 게이머를 무조건 이길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더 진행해볼까요.

며칠이 지나 7만 명의 조폭들이 국민의 자격을 잃고 재산을 빼앗긴 채 나라 밖으로 ¤겨났다. 50만여 명의 인구가 단숨에 43만여 명으로 줄었다. 나라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한 두 달이 지나자 문제만 더 커졌다.

"전하! 이번에는 백성들이 억울하다며 탄원을 하고 있습니다. 잘못인지도 모르고 몇 번 주먹을 휘둘렀을 뿐인데 추방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주장입니다. 심지어 몇몇은 '우리가 조폭 짓을 했다는 증거가 있느냐'며 재판을 걸려 합니다."

"전하! 그것뿐이 아닙니다. 몇 주 사이에 새로운 조폭들이 창궐해 예전과 똑같은 수탈이 또 다시 시작됐다고 하옵니다."

아이온 세상의 '통치자'인 엔씨소프트가 대대적인 조폭 추방조치를 내렸지만 이처럼 결과가 신통치 않습니다. 이용자들 사이에 '반칙 좀 하면 어때'라는 생각이 만연하기 때문이죠. 중국에 자리를 둔 '작업장(아이템을 생산해 돈을 버는 기업형 조직)'의 영향도 있습니다. 오토 프로그램을 버젓이 판매하는 사이트를 처벌하기 위한 '사이버 민생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아이템 유료 거래가 많을수록 게임의 인기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토 프로그램 철퇴에 나선 '통치자'의 령(令)이 잘 서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사기와 반칙이 만연한 온라인 게임 세상 속에서는 정직과 배려 같은 중요한 인생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입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용자들도 그런 영향을 받겠죠. 딴 세상 얘기 같다고요? 한국정보문화진흥원(2007)에 따르면 여러분의 청소년 자녀 10명 중 8명이 이런 온라인 게임 세상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5명은 온라인 게임에서의 행동을 현실에서도 똑 같이 해보고 싶어 한답니다.

김용석 기자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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