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시장과 자유무역 ‘악수’… 한미FTA에 자극제

  • 입력 2009년 3월 16일 02시 52분


EU 왜 서두르나?

자유무역 확대 통해 美에 경쟁우위 노려

경제 효과는?

한국 年경제성장률 0.2~0.5%P 오를듯

남은 과제는?

관세-원산지표시 등 이달 대타협 가능성

《유럽연합(EU)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타결 선언을 한국 정부에 제안함에 따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FTA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다음 달 초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한국과 EU가 FTA 타결을 선언하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의 움직임에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금융위기 국면에서 세계 통상질서의 흐름을 바꾸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FTA 허브’를 지향하는 한국 정부의 통상전략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EU FTA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한미 FTA 조기 비준을 압박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 세계 2위의 ‘메가(Mega) 시장’ 탄생

한-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은 5억 명 인구에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4조1902억 달러(2007년 기준)에 이르는 세계 최대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 EU로서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한국의 EU에 대한 교역규모는 2007년 928억 달러로 미국(830억 달러)을 제치고 중국(1450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한국에 대한 EU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43억3000만 달러로 1위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한-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GDP는 단기적으로 2.02%(15조7000억 원), 장기적으로 3.08%(24조 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증가해 취업자가 30만1200∼59만7060명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LG경제연구원은 한-EU FTA 체결 후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0.2∼0.58%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 왜 G20 정상회담인가

23, 24일 서울에서 열릴 8차 협상을 앞두고 ‘조기 타결’ 카드를 먼저 제안한 것은 EU 측이었다. 경제부처 당국자는 “EU 측은 이번에 실무적으로 협정 내용에 합의한 뒤 G20 정상회의에서 타결 사실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자고 했다”며 “타결 발표를 통해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저지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고 밝혔다.

EU의 적극적인 태도는 한국 정부로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영국, 브라질과 함께 G20 정상회의의 공동 의장국인 지위를 활용해 보호무역 방지를 위한 ‘글로벌 어젠더’를 제안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고, 교착상태에 빠진 한미 FTA에도 자극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EU의 제안이 ‘절묘한 타이밍’에 나왔다고 평가했다. 금융위기로 패닉(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 세계 경제를 살리는 해법을 놓고 미국과 EU가 벌이는 주도권 싸움에서 EU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

미국은 내부적으로는 ‘바이 아메리칸’ 같은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짙은 정책을 내놓으면서 다른 나라를 향해서는 재정지출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EU는 자유무역 확대를 통해 세계 경기를 떠받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윤성욱 동아대 교수(국제법무학)는 “EU로서는 G20 회의에서 한-EU FTA 타결을 선언하는 것이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최대의 카드”라고 말했다.

○ 자동차 등 쟁점 막판 조율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월 20일 EU와의 통상장관 회담을 마친 뒤 “한-EU FTA 협상이 9분 능선을 넘었다”며 “이제 남은 것은 10% 미만”이라고 말해 협상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내비쳤다.

현재 협상 쟁점은 △상품양허(관세감축) △관세 환급제도 △원산지 표시 △자동차 관련 기술표준 등으로 좁혀져 있다.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와 이그나시오 가르시아 베르세로 EU 수석대표는 이달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담을 열고 양측의 의견차를 상당 부분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일부 쟁점이 남아 있긴 하지만 조기 타결의 필요성을 양측 모두 절감하고 있다”며 “이번 8차 협상이 ‘마지막 협상’이 돼야 한다는 점에도 이견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평균 관세율 EU > 美… 한국 전자-소형車 수출 더 혜택

■ 한미FTA와 비교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 FTA는 한국이 세계 양대 경제권과 거대 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해 교역 규모를 크게 늘릴 기회를 얻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나 향후 비준 전망 등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EU가 역외에서 수입된 공산품에 물리는 평균 관세율은 4.2%로 미국(3.7%)보다 높아 한-EU FTA의 관세인하 효과는 한미 FTA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EU FTA가 발효되면 상대적으로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이 높은 한국의 액정표시장치(LCD) TV,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이 EU 시장에서 더 많이 팔릴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한국 소형차 수출이 늘겠지만 고급차는 독일 등 EU 회원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국에서 더 많이 팔릴 가능성이 크다.

이와 달리 한미 FTA가 발효되면 경쟁력이 높은 한국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대미(對美) 수출은 늘어나지만 미국산 공산품의 수입은 그다지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농산물 분야에서 EU는 FTA를 통해 돼지고기, 유제품, 포도주 등을 한국에 더 많이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미 FTA가 발효돼도 곡물 과일 등 미국산 농산물 수입은 늘어난다. 반면 한국은 EU와 미국에 수출할 수 있는 농산품이 많지 않아 농업 분야에서는 미국, EU에 비해 불리한 편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향후 비준절차 면에서 27개 국가의 연합체인 EU가 단일국가인 미국보다 더 쉬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한미 FTA를 체결할 때 의회의 무역촉진권한(TPA)을 위임받아 협상한 뒤 나중에 의회의 비준동의를 받는 방식을 택했다.

반면 EU 협상단은 협상 단계마다 일일이 주요 쟁점에 대해 27개 회원국의 동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한-EU FTA가 진행속도는 느렸지만 협정 체결 후 비준의 어려움은 한미 FTA보다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로서는 노무현 정부가 주도한 한미 FTA 협상과 달리 한-EU FTA는 현 정부 경제개방 정책의 상징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애착을 가질 만하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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