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와타나베 부인’만 있나? 짠순이도 많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8일 03시 09분


■ 2박3일 서울 관광 온 日직장인 2명 동행 취재

25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면세점. 다쓰미 사야 씨(22)와 후지오카 유카 씨(22)가 한스킨과 미샤 등 국내 화장품을 발견하는 순간 “BB크림!”이라고 외쳤다.

BB크림은 ‘미(美)의 카리스마’로 불리는 일본의 유명 여장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 ‘잇코’가 극찬하면서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쇼핑 목록이 된 화장품.

BB크림을 ‘싹쓸이’라도 할 것처럼 돌진한 다쓰미 씨가 집어든 것은 ‘한스킨 워터액션 BB크림’ 1개였다.

가격은 2만3405원. 일본 돈으로 환산하면 1510엔. 대학생들의 점심 두 끼 값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3개를 사면 사은품을 준다”는 판매원의 유혹에 다쓰미 씨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자신에게 다짐하는 듯 “하나만 가지고도 몇 달은 쓸 수 있잖아”라고 중얼거리며 단호하게 발길을 돌렸다.

일본 엔화가치가 치솟으면서 국내 공항과 항구, 백화점이 일본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 중에는 서울 시내 특급호텔에 묵으면서 강남 지역 고급미용실에서 피부 관리를 받고, 명품을 잔뜩 싸들고 가는 ‘와타나베(渡邊) 부인’이 많다.

하지만 다쓰미 씨와 후지오카 씨처럼 중저가 비즈니스호텔로 숙소를 정하고 식사도 저가, 쇼핑은 필요 최소한을 고집하는 ‘가쿠야스(格安·매우 싸다는 뜻) 족’, 일명 ‘짠순이족’도 적지 않다.

기자가 2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동행 취재한 다쓰미 씨와 후지오카 씨가 대표적인 ‘가쿠야스 족’이었다.

친구 사이인 이들은 올해 오사카(大阪)대 도요나카(豊中) 캠퍼스를 졸업하고 어렵게 직장을 잡았다.

이번 여행은 취업을 축하하기 위한 둘만의 여행이었다.

롯데백화점 면세점은 이들이 여행 둘째 날 오전 가장 먼저 들른 쇼핑장소였다.

‘짠순이’ 기질을 발휘한 것은 후지오카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40∼50% 세일’이라고 적힌 명품 선글라스 코너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결국 식품코너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친구들에게 ‘합격 턱’을 내기 위한 돌김과 밤초콜릿을 각각 2만6350원(1700엔)과 2만7745원(1790엔)어치씩 샀다.

점심으로 돌솥비빔밥을 먹고 이들이 들른 곳은 서울 중구 을지로6가 동대문 인근 ‘두산타워’. 여성복 매장에선 구경만 한 뒤 5층 기념품코너에서 복분자 초콜릿(7500원)과 유자차(7000원), 김치맛 김(1만 원)만 샀다.

“첫 월급 17만 엔(약 263만 원) 정도로는 한국에서 마음 놓고 쇼핑을 못하겠다”며 어두운 표정을 짓던 이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 것은 남대문시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다쓰미 씨는 ‘깎는’ 남대문시장 문화에도 금방 적응했다. 그는 남대문 중앙상가 1층에서 2만5000원짜리 잠옷을 1000원 깎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24일부터 26일까지 2박 3일 일정의 여행 기간에 쓴 돈은 1인당 7만5000엔(약 116만 원).

준비 과정부터 치밀했다.

인터넷과 안내 팸플릿 등에서 가격을 비교해 6만5000엔짜리 패키지 상품(항공권과 숙박, 관광비용 포함)을 골랐다. 시내 중심가 호텔 대신 서울 성동구 도선동에 위치한 비즈니스호텔에 머물고 식사도 고급 한정식 대신 해물전골과 비빔밥을 선택했다.

쇼핑 및 여가 비용으로 가져온 돈은 1만 엔. 카드를 약간 쓰기는 했지만 다쓰미 씨와 후지오카 씨가 쓴 돈은 각각 15만3755원과 13만3245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와타나베 부인’과 ‘가쿠야스 족’이 뚜렷이 갈리는 데는 최근 일본의 경제사정이 반영돼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40, 50대 여성들과 달리 젊은층은 경기침체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고 있어 아낄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 일본 인기 포털사이트에는 한국 여행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팁이 상당수 올라 있다.

“공항에서 리무진 대신 150엔짜리 일반버스를 타고 가라.”

“하루 800엔인 찜질방에서 자면 숙박비를 아낄 수 있다.”

여행 가격 비교 사이트인 ‘에이비로드’는 최저가 상품으로 1만4500엔 상품(2박 3일)을 추천하고 있다.

한편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23만7000여 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5.6% 늘었다. 같은 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쓴 돈은 9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배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와타나베(渡邊) 부인

와타나베 부인은 특정인이 아니라 남편이 정년퇴직하거나 퇴직을 앞둬 여유자금을 넉넉하게 갖고 있는 일본의 중상층 주부들을 가리키는 조어. 이들의 투자자금이 호주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의 외환시장을 요동치게 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유행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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