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상승, 수출 동력될 수도”… 알듯 말듯 尹의 ‘속내’

  • 입력 2009년 2월 26일 03시 00분


■ 윤증현의 2기 경제팀, 강만수때와 180도 달리 대응

“찔끔찔끔 대책으로는 실탄만 날린다” 경험

유가-경상수지 등 외부환경 개선도 영향준듯

고점 찍었다 판단되면 환율고삐 조일 가능성

재정부 “급격한 변동땐 적극 대응 방침 불변”



‘환율 개입을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환율 문제를 잘 활용하면 수출 확대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며 “위기 극복의 근간인 수출 분야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밝히자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정부의 속내를 읽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 장관의 발언은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수출을 위해 고(高)환율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적극적인 개입으로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을 막아 온 외환당국의 정책이 180도 바뀐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한 내용이다. 윤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자 모처럼 환율 하락세로 출발한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매수세가 다시 강해지는 등 시장이 출렁거렸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윤 장관이 이끄는 2기 경제팀의 외환 정책이 전임 팀과 크게 달라질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구체적인 정책 변화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가 시장 흐름을 정하는 관건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제 금융시장의 큰 틀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당분간 자제하면서 환율 상승에 따른 장점을 최대한 취하는 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발톱 감춘 외환당국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30원 내린 151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환율은 미국 뉴욕 증시 급등으로 전날보다 17.30원 하락한 1499.00원으로 출발했지만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의 파산보호 신청설, 동유럽발(發) 금융위기 확산 같은 외부 악재에 수입업체의 결제수요 증가가 가세하면서 혼조세로 장을 마쳤다.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는 “당국이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개입에 나설 뜻을 내비치다가 돌연 고환율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재정부 당국자는 “윤 장관의 발언은 고환율의 부정적인 면만 너무 부각되고 있다는 관점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언급한 것”이라며 “지나친 쏠림 현상이 있을 때 대응해야 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 외환 전문가는 “2기 경제팀이 이전과 다른 차별화된 외환정책 포인트를 고민하는 것 같다”며 “찔끔찔끔 나서기보다는 고점을 찍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대규모 개입을 통해 환율의 고삐를 잡을 가능성이 있어 환투기 세력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달러 상승 나쁜 것만은 아니다”

2기 경제팀이 실탄(외환보유액)이 줄었는데도 환율 상승에 초조해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제여건이 작년 이맘때에 비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은 부작용도 있지만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작지 않다.

1기 경제팀은 지난해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경상수지 흑자 전환을 위해 환율 상승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물가 부담을 키웠다. 이에 대해 비판여론이 커지자 환율을 다시 떨어뜨리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 외환보유액을 소진했다.

현 경제팀은 지난해 10월 이후 3개월 연속 경상수지가 흑자를 내는 가운데 출범했다. 지난해에는 시중은행들이 달러를 구하기 어려워 ‘제2의 외환위기’ 우려가 고조됐지만 지금은 달러 값이 비싸긴 하지만 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원화 가치가 하반기에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지면서 ‘셀 코리아’로 일관하던 외국인투자가들이 채권과 부동산 등에서 ‘바이 코리아’로 돌아서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꼽혔던 국제유가도 골칫거리가 아니다. 1기 경제팀이 출범했던 2008년 2월 중동산 두바이유는 배럴당 90.16달러였지만 올해 2월엔 평균 43.12달러로 뚝 떨어졌다. 물가도 6개월 연속 하락해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부담이 이전보다 덜하다. 오히려 세계경제는 경기 침체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에 물가와 자산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닥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의 개입 없는 고환율은 다른 나라들이 문제 삼기 어려운 수출기업 지원책이기도 하다. 한 증권사 사장은 “환율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하반기에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세계 각국이 경기 침체 속에서 수출 확대를 고민하고 있는데 환율 상승은 일정 기간 수출기업이 버틸 체력을 충전해 주는 부작용 없는 수출 지원 정책”이라고 말했다.

○ 단기 급등은 좌시하지 않을 듯

문제는 환율의 상승 속도다. 환율이 단기간에 급등하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기업들의 리스크도 커진다. 은행의 자산 건전성이 나빠지고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정유 식품업체 등은 환차손 위험에 노출된다. 통화옵션 파생상품인 키코(KIKO) 계약 기업과 엔화 대출자들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외국인투자가들이 이탈하는 것은 물론 환율 급등을 우려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섣불리 내리기 힘들어져 통화정책의 발이 묶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당국은 환율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 국내 달러 조달 여건을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올해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규모를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20조6000억 원으로 잡았고, 외평채의 조기발행도 저울질하고 있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조금 높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외평채 발행에 성공한다면 시중은행들이 외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물꼬가 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정부의 지급보증을 통한 은행의 신규 외화차입이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한일 통화스와프 연장 △미국 국채를 담보로 하는 달러 조달 △해외 교포의 국내 투자 유도 △정부투자기관의 대외자산 매각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

時테크 하반기 하락 가능성 환전 최대한 늦춰라

金테크 금펀드-계좌에 가입 외화예금 적극 활용

■ 고환율시대 환테크 이렇게

고등학생 아들을 미국 버지니아 주의 기숙학교로 유학 보낸 회사원 김모 씨(46)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달력과 환율 시세를 체크한다.

3월 초까지 현지 학교에 납부할 등록금을 송금해야 하는데, 원-달러 환율이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환율이 달러당 1000원 아래에서 움직였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는 환율요인으로만 아들의 등록금이 50% 이상 오른 셈이다.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위해 자녀들을 외국으로 내보낸 대부분의 가정은 요즘 김 씨와 비슷한 근심에 빠져 있다. 같은 금액의 외화를 송금하려면 더 많은 원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환전문가들은 기본적인 행동수칙 몇 가지만 잘 지켜도 환율변동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 씨의 경우 ‘미래에 필요한 외화를 쌀 때 미리 확보해둬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특히 외국에 있는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송금을 해야 한다면 작년 초와 같이 환율이 낮을 때 한꺼번에 많은 양의 달러화를 마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올해 외화송금을 계획하고 있다면 가급적 환전을 늦추는 게 좋다.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하면 당분간은 고환율이 유지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환율이 지금보다 상당 폭 떨어질 것(달러화 가치 하락)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해외 출장이나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은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면 출장이나 여행을 하반기로 미루는 것이 좋다.

미룰 수 없는 출장이나 여행이라면 해외에서 신용카드보다는 현금이나 여행자수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신한은행 분당PB센터 김은정 팀장은 “환율이 단기적으로는 오르는 추세이기 때문에 나중에 결제를 하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그 기간에 환율이 올라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갖고 있는 외화는 무작정 장롱 속에 보관하지 말고 금융회사에서 외화예금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만기가 정해진 외화 정기예금은 환차익을 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자 수입도 챙길 수 있다. 달러화 하락이 예상된다면 금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헤지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금값은 달러화 가치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은행에서 금 적립계좌에 들거나 금펀드에 가입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日은행들, 한국 대출 회수 않기로” 3월 위기설 일축

허경욱 재정부 1차관

일본 은행들이 한국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최근 금융시장 일각에서 번졌던 ‘3월 위기설’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3월 위기설은 일본 은행들이 3월 말 결산을 앞두고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일시에 회수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사진)은 25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일 국제금융세미나에서 “일본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대출을 회수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처럼 위기를 조장하는 루머에 한일 양국이 정확한 시장 정보를 통해 대응하면 시장이 흔들리는 것을 훨씬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본 금융기관이 한국에 대한 대출을 전혀 줄이지 않겠다고 밝혀 고맙다”고 덧붙였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도 이날 3월 위기설과 관련해 “근거가 희박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윤 장관은 “올해 1분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일본계 자금은 20억 달러도 되지 않는다”며 “외국인 투자자금 중 채권에서 일본계가 차지하는 것은 0.6%, 주식은 0.2%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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