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난 조국에 비수 꽂은 악마의 앞잡이”

  • 입력 2009년 1월 5일 11시 51분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는 5일 “외국자본에 유린당하는 조국의 현실을 방관하고 조국에 비수를 꼽은 외국 자본의 한 가운데 섞여 있었던 난 악마의 앞잡이였다”며 한국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새벽 다음 아고라에 올린 `마지막에 기댈 것은 결국 희망입니다‘란 제목의 글을 통해 자신의 사적인 얘기를 털어놓으며 “시한폭탄인 미국 서브프라임 자산설계에 발을 담궜던 장본인으로써 역사의 쓰레기인 제가 본분을 망각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6.25을 직접 겪고 젊을 때 집을 나와 사기를 당하고 머슴살이도 해봤다”면서 “32살에 배고파서 미국으로 건너가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딴 뒤 금융계에 몸담고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명제 하에 돈이 안 되는 건 가차 없이 자르고 조립하는 기업 인수 합병과 파생상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IMF 당시 6.25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라는 조국을 외면하고 조국에 비수를 꽂는 외국 애들 한 가운데 섞여있었다”며 “그 저주 받은 악마의 도구라는 걸 만든 장본인으로 지금 와서는 비명과 눈물로 나라에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미네르바는 마지막으로 “지금은 시골의 한 요양원에 있으며 몸이 안 좋다”고 밝힌 뒤 “한국경제는 반드시 재건돼야 한다. 사람으로서 존귀함과 고결함을 돈이라는 그 저주받은 쓰레기로부터 지키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다음은 미네르바의 글 전문.

안녕 하십니까.

늙고 초라한 노인네가 이제 제 이야기 하나를 하고자 합니다. 제목이 결국 마지막에 기댈 것은 희망이라는 단어라고 적었습니다.

사람이란 샐노병사라는 거역할 수 없는 인생의 굴레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젠 의사가 술은 그만 마시라고 하는데 사람이란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는 것이란 본능적으로 아는 법.

그것은 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 할수 없는 영역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신체적 나이라는 걸 본인 스스로 체감하게 되지요. 한 마디로 사람이라는건 나이가 먹으면 자신이 대략 언제쯤 인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

네...................그렇습니다. 전 치열하다면 치열하게 비겁하다면 비겁한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젊을 때는 고 정주영 옹께서 하신 것처럼 집에서 소를 훔쳐 온것 가지는 아니여도 젊은 혈기에 집에 있는걸 들고 도망치다 시피 나와서 말 그대로 서울땅에 올라 와서 사기라면 지금의 펀드를 날려 먹었다는 그런식의 사기를 당하고 나서 제 아버님으로부터...어머님으로 부터 다리 밑에서 빌어 먹을 놈이라는 모욕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네..... 그 시절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후에 나중에 머슴살이라는 것도 했습니다. 머슴살이라는것이 예전 조선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젊은 친구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50년대...그리고 60년대 까지도 집 안에서 식모 살이 비슷한 그렇게 사는 머습살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전후 50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분들은 절대로 이해 할수 없는 지옥의 끝이라는 것을 직접 뼈를 깎는다는 처절한 인간의 마음 속 절망과 좌절의 시간들이 이 한국이라는 땅에 존재 했습니다.

전후 50년대. 전쟁은 53년 후에 끝나고 말 그대로 미군정이라는 것이 세워질 그 당시 서울의 모습이라는 것은 처참함. 그리고 아이들의 울부짓음.

공중 폭격이라는 것이 지금 영화나. 저도 봤습니다만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고하나요?. 그런것과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참담함....... 그 말로 밖에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그런 시간들이였습니다. 그 때는 미국의 식량 원조로 살았습니다. 말 그대로 메이드 인 유에스 에이 라는 스탬프가 찍힌 것이 인천항에 미군 화물선에 양키 애들이 선적해다 주는 걸로 끼니를 해결하던 그 시절이였죠.

저희 같은 늙은이들은 그런 시간을 전후 53년 이후............ 말 그대로 10년여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지방의 땅을 가진 지주들이나 원래 에전에 돈을 가진 그룹을 제외 한다면 거의 대부분 저와 같은 참담한 그 저주 받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과연 어떤 생각과 고민들을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전 그때 오로지 살아 남아야겠다는 그 생각 밖에 안들더군요. 생존.... 그 생각 뿐이였습니다. 그 때는 서울에 3층 이상 건물이라는 것이 공중 폭격으로 없었던 시절이였습니다. 그래서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고국을 등 지고 독일로 미국으로 독일에는 그 당시 남자는 광부로 가서 지하 몇 백미터..아니면 노천 탄광이라고 땅을 안 파고 가는 프랑스 접경 지역의 알자스 지방으로 가서 달러 벌이를. 한국계 간호사로는 여성 분들이 무수히 가서 일을 하고 달러로 고국에 송금을 하던 시절이였습니다.

네..... 그렇죠.. 그 전까지는 20대 까지는 군대에.. 흔히 예전 분들이 말하는 머슴살이라는 걸로 들어 가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전 학위라는 것도 30살이 넘어서 흔히 미국 유학 가셨다는 그 분들이 말하는 쌔 빠지게 고생 했다는 그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그런 류의 고생이라는걸 해서 학사 석사 과정을 밞아 가면서 말 그대로 학위라는걸 30대 중반이 넘어서 받은 비천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말하는 그 말로 맞는 말입니다. 그 후에 전 그 당시로는 미국에서 성공 그 단 하나의 절대 명제 하에 돈이 안 되는건 가차 없이 짜르고 조립하고 M&A 라는 기업 인수 합병에 지금 이 저주 받은 굿판이라는 서브 프라임의 자산 설계라는데 발 담그면서 일반 가계 대출 수익 모델링...거기에 환율에 따른 주가 모델링까지.

말 그대로 워렌 버핏이 말하는 그 파생 상품이라는 시함폭탄에 발을 담군 쓰레기라면 역사의 쓰레기가 저란 인간의 실체입니다. 97년 그 당시도 제 마음속에 남은 1%의 애국심이라는 것이 너무나 뻔히 월스트리스의 석양 저무는 마천루에서 티비 뉴스를 보면 너무나 뻔하고 당연하고.

그리고 같은 한국인으로써 저래서는 절대 안 될 국부 유출과 외국에게 유린 당하는 창.녀와 같은 조국의 현실이라는걸 보면서 ..........

한국에 와서............. 다 접고 단 하나의 회사라도 너무나 잘 아는 그 IMF 와 외국인 투기 자본과 그 저주 받은......그리고 그 저주 받은 악마의 도구라는걸 만든 그 장본인으로써..

지금 와서는 비명과 눈물로 이....나라는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해 준 이 나라에 사죄하고 용서를 하고 이 통한의 지금도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저 자신에 대해 ............

97년.........98년 당시 저는 ...CNN과 블름 버그......일반 매체로 그 비명의 97년 IMF 라는걸 다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

단 하나의 회사라도 살릴 수 있었음에도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모든 걸 방관자로써 ....그것도 외국에서 제 3자로써 있었던 제가............진짜 저 자신이 이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저라는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해 준 이 나라에 씻을 수 없는 잘못 아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수 많은 자살자들........한강에서 시체를 건져 올린다는 말 그대로 저주 받은 6.25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라는 그 순간을 외면하고.

조국이라는 곳에 비수를 꼽은 그 외국 애들....그 양키들이라는 애들 한 가운데 섞여서.........

저는... 제 본분을 망각했던 것입니다....지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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