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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1월 1일 0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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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앞두고 산에 올라봤습니다. 27년 동안 몸담은 직장을 떠나니 마음이 뻥 뚫린 것 같더군요. 그래도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으니 걱정은 없습니다.”
1981년 입사한 현대중공업에서 지난해 12월 정년퇴직한 박상봉(58) 씨는 정년퇴직으로 ‘인생의 제2막’을 연다. 이달 5일부터 프랑스 석유회사 토탈 한국사무소에서 용접 감독관으로 근무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생산·기술직 전체 퇴직자 537명을 대상으로 재계약을 신청받아 이 가운데 491명의 고용을 연장했다. 하지만 대다수 동기와 달리 박 씨는 ‘재계약 카드’를 버리고 정든 일터를 떠났다. 그가 속한 해양사업부에서 재계약을 포기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현대重 정년퇴직 외국계회사 취업, ‘27년 용접 한길’ 박상봉씨
“청년실업이 심각한 마당에 젊은 후배가 들어올 자리를 내줘야죠. 저는 다른 길에 도전하면 됩니다.”
○ 예순 앞둔 박 씨의 ‘도전’
박 씨가 새 인생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퇴직이 끝’이란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일을 안 하면 심신이 처질 수밖에 없죠. 곧 늙어버리게 될 겁니다. 또 다른 일에 도전하다 보면 식욕도 절로 돌고 마음도 젊어집니다.”
박 씨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정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나이가 젊어도 늙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도전해야 젊어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요즘 안정적이고 편한 직업만 선호하다가 자리를 못 잡는 젊은이가 많죠. 어떤 직장이든 마음에 딱 차지 않더라도 일단 도전해봐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걸 터득하고 의외의 길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박 씨의 일에 대한 애정은 그의 좌우명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일이란 신(神)이 준 축복’이란 좌우명을 가슴에 품고 30여 년을 달렸다. 후배들이 이 말의 참뜻을 알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현대중공업 입사 전인 27세 때 다진 그의 다짐은 도전을 위한 ‘엔진’이 됐다.
“중동에 용접 기술자로 파견 나갔을 때 한국인들의 용접 기술이 세계적 인정을 받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국가의 약한 위상에 개인의 역량이 묻히니 아쉽더군요. 그때 세계적 용접 기술자로 꼭 성공해 한국인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 유비무환으로 행복한 정년퇴직
박 씨는 1988년 매년 정부가 산업 부문별로 한 명씩 선발한 ‘대한민국 산업명장(名匠)’에 올라 사내외에서 높은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2년 전 미국용접협회의 ‘국제 용접전문가 자격증(CWI)’ 시험에 뛰어들었다.
“한국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물 순 없었습니다. 국제 자격증을 따려니 처음엔 눈앞이 깜깜했지만 세계의 인정을 받기 위해 시작했죠.”
용감하게 시작한 공부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다.
늦은 나이에 영어 단어가 가득한 문제집을 펴든 박 씨는 가슴이 갑갑했다. 모르는 단어가 가득해 해독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포기하려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고 한다.
“죽기 살기로 매일 오후 9시에 잠들어 다음 날 오전 2시에 일어나 공부했어요. 그렇게 1년 하다 보니 결국 되긴 되더라고요. 신기하더군요.”
지원자의 40%가량만 합격한 이 시험에 박 씨는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박 씨는 영어 공부에 더욱 속도를 냈다. 중동 파견 시절부터 외국인 선주(船主)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일하기 위해 영어 실력의 필요성을 절감한 터였다.
“영어는 노력이에요, 노력. 늦은 나이지만 단어를 철저하게 외우고 문장 읽기 훈련을 한 뒤 외국인 기술자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결국 늡니다. 실력은 한번에 성장할 순 없으니 조급해하진 말아야 해요.”
박 씨는 새해에도 또 다른 국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할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시집간 딸이 남긴 책상을 정리해서 내 책상을 만들고 수험생이 되어 볼까 한다”며 웃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