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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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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그랜드 플랜’에 먹구름
주가폭락-유가하락 악재겹쳐 국부 1조달러 증발
재정적자 우려 확산… 재집권 시나리오도 삐걱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사진)가 대통령 시절 ‘러시아의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마련했던 그랜드 계획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차질을 빚고 있다.
푸틴 총리는 올 5월 대권을 후계자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넘기면서 2020년까지 러시아를 경제규모 세계 5위의 선진 대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2020 푸틴 플랜’을 발표한 바 있다.
▽국부 1조 달러 증발=미국 뉴욕타임스는 12일 최근 금융위기로 러시아 국부 1조 달러가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사라진 1조 달러’는 푸틴 총리가 대통령 시절 8년 동안 모아온 오일머니(외환보유액+안정화기금+예산잉여금)보다 큰 규모다.
푸틴 총리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2000년부터 올 3월까지 러시아는 연평균 7∼8%의 고속 성장을 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러시아 주식의 시가총액도 1조5000억 달러 규모가 됐다.
그러나 올 5월 2,500 선까지 올랐던 러시아 대표주식 지수 RTS는 금융위기 여파로 10일에는 846으로 떨어졌다.
이 신문은 “최근 러시아군의 그루지야 침공 이후 러시아 주식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의 비관론이 확산되는 바람에 러시아 주가가 다른 신흥국보다 더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주가 하락보다 더 나쁜 악재는 유가 하락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러시아 수출액의 65%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부펀드로 불리는 복지기금(옛 안정화기금)과 예산의 원천이었다. 한때 배럴당 140달러를 상회하던 국제유가는 지난 주말 78달러로 떨어져 이제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그랜드 플랜 차질=이른바 2020 푸틴 플랜은 러시아가 안정과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시절에 짜놓은 구상이다.
2020년까지 러시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을 3만 달러로 끌어올려 5대 경제대국이 되겠다는 구상의 이면에는 푸틴 총리의 재집권 시나리오가 깔려 있다. 2012년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푸틴 총리가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해 두 번 연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경제장관들이 1일까지 2020 플랜에 들어갈 핵심 계획을 내놓기로 했으나 최근 경제 위기로 장관들의 의견이 갈려 마감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크렘린의 통제를 받는 러시아 국영TV들은 현 경제위기를 외면하고 있다. TV들은 러시아 금융시장에 대한 뉴스를 아예 내보내지 않거나 짤막한 뉴스로 처리하고 있다.
한 외국인 투자가는 “언론 통제로 러시아 시민들이 위기를 느끼지 못하지만 우량 기업과 은행의 파산, 임금 삭감과 해고가 시작되면 푸틴 총리에 대한 지지도도 내려가고 푸틴 플랜에 회의론이 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