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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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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손님 반으로 줄고
대형소매업체 잇단 파산
대미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에 악영향 우려
8일 오후 7시(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 주 한인 밀집지역인 애넌데일의 A 한식당.
100여 개 좌석이 있었지만 붐벼야 할 저녁 시간인데도 손님은 15명에 불과했다. 한식당 사장은 “작년 이맘때만 해도 퇴근길 직장인이나 단체 손님으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한산하다”며 “인근 대부분 음식점의 손님이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메릴랜드 주 록빌에서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로 가는 고속도 95호선 인근에는 ‘임대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건물이 4개나 있었다. 대부분 한 개 층 전체를 임대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빌딩 한 개 층을 모두 임대한다는 플래카드는 보기 힘들었다.
미국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해 왔던 민간소비가 줄어들고 있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 자료 기준으로 지난해 미 국내총생산(GDP) 중 민간소비 비율은 70.3%에 이른다.
활발한 민간소비가 미 경제를 떠받들었지만 최근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한국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경제 1번지 뉴욕도 휘청
귀금속과 잡화 매장인 1층은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여성 및 남성의류 매장인 2∼4층은 한산했다. 1층도 정작 물건을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최정은 KOTRA 뉴욕 코리아비즈니스센터(무역관) 대리는 “대규모 세일을 하지 않으면 뉴요커(뉴욕 시민)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불황을 모르던 뉴욕 시내 백화점의 명품 판매도 9월 중순부터 작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꺾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빈 택시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인도 출신 택시 운전사인 압둘 하미드 씨는 “지난해 하루 평균 300달러(약 38만 원) 정도 수입을 올렸지만 올해는 하루 200달러 안팎으로 줄었다”며 “몇 년 전만해도 뉴욕 도로에서 오토바이나 자전거는 드물었지만 요즘은 흔해졌다”고 말했다.
미 교통국에 따르면 올해 6월 미 자동차의 운행거리는 전년 동기보다 122억 마일(약 196억 km) 감소했다. 그 대신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 이용은 늘었다.
○ “작년보다 지출 줄였다” 응답 6%P 뛰어
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마치고 복귀하는 때인 8월 ‘백투스쿨’ 시즌은 연말연시 다음으로 치는 소비 시즌이다. 하지만 올해는 소비가 주춤했다.
시장조사업체인 리테일포워드가 미 전역의 4000가구를 대상으로 올 8월 지출 규모를 조사한 결과 34%는 ‘지난해보다 늘렸다’, 41%는 ‘똑같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8월 조사 때보다 각각 2%포인트, 5%포인트 낮은 수치다. 반면에 ‘지난해보다 줄였다’는 응답은 20%로 6%포인트 뛰었다.
민간소비가 줄면서 대형 소매업체들의 파산도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이후 가구전문점인 ‘레비츠’와 전기용품 판매점인 ‘샤퍼이미지’ 등 중간 규모 소매체인 8곳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그중 샤퍼이미지는 올 6월 결국 도산했다.
스포츠 의류업체인 ‘풋로커’는 앞으로 1년 동안 140곳 이상의 점포를 없앨 예정이며, 여성의류 전문브랜드인 ‘앤 테일러’도 921곳의 매장 중 3년 안에 117곳을 정리할 계획이다.
○ “한국 업체들 가격 거품 최대한 빼야”
최기형 KOTRA 북미지역본부 부본부장은 “미 소매업계가 최근 소비 부진으로 섬유류 주문을 줄이자 중국의 중소 의류 생산업체들이 도산하고 있다”며 “대미(對美)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도 곧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부본부장은 “한국 수출업체들은 인건비나 물류비 등을 줄여 최대한 가격 거품을 빼야 한다”며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으로 한국 수출업체가 환차익을 본 만큼 미 바이어들의 어려움을 덜어줘 상호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욕·애넌데일·필라델피아=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