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투자자도 금융맨도 패닉 상태

  • 입력 2008년 10월 10일 19시 31분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으로 금융시장이 혼돈에 빠지면서 금융기관에 돈을 맡긴 투자자와 대출 고객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일부 고객들은 피해자 모임까지 결성해 소송 등 집단 대응도 불사할 태세다.

시중 금융기관 직원들도 패닉 상태다. 주가 폭락에 고민하던 증권사 직원의 자살 사건 사건까지 일어났다.

10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에는 오전 10시부터 이 은행의 파생상품 '우리파워인컴'에 투자한 고객 50여 명이 모여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파워인컴 가입자에게 처음 약속대로 원금을 보장하라. 펀드를 정기예금으로 속여 판매한 우리은행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문제를 즉각 해결하라"고 주장했다.

은행 측이 '원금 손실 가능성은 0.02%로 극히 낮다'고 광고하며 손실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 이 상품은 8월 말 기준으로 누적수익률이 -81.45%를 기록했다.

투자자 송정화(40) 씨는 "입주자금을 털어 넣었는데 원금의 20%밖에 남지 않아 가정이 파탄나게 생겼다. 이름도 외우기 힘든 펀드를 예금처럼 보장해준다고 권해 놓고 이제 와서 나몰라라 하면 어떡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인터넷에 피해자 카페를 만들어 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다.


▲ 영상취재 :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이진아 동아닷컴 인턴기자

엔화대출자모임 회원 30여 명도 이날 오후 2시 서울 한국은행 본점을 방문해 "정부와 시중 은행이 엔화 대출을 종용해왔다"며 환율 상승에 따른 대출 만기연장을 요구했다.

포천에 위치한 섬유회사 관리부장인 이모(58) 씨는 "2006년 4월 엔화 이자율이 싸다는 은행직원의 권유로 한화 47억 원 정도를 대출받았는데 당시 825원하던 원·엔 환율이 1300원대까지 올라 도산 위기에 처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주가폭락으로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지자 증권사의 한 영업직원이 양심의 가책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K증권 서초지점 직원 유모(32) 씨가 9일 오후 8시 25분경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부근의 한 모텔에서 객실 문에 넥타이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유 씨의 아버지는 "증권사 투자 상품을 판매했던 아들이 최근 주가 급락으로 고객들의 항의에 시달려 심적 부담을 느껴왔다"며 "고객 자금으로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봐 1500만 원을 빚졌다고 해서 얼마 전 750만 원을 부쳐줬다"고 말했다.

유 씨의 자살 소식을 들은 증권사 직원들은 '터질 일이 터졌구나'라는 분위기다. 증권사 직원 이모(36) 씨는 "동료들도 요즘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한다. 원금이 50~70%까지 손실 난 고객이 수두룩하다. 가슴만 답답하다"며 "자살한 분의 심정이 정말 이해된다"고 말했다.

황형준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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