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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23일 23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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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가 결혼자금 1000만 원을 투자한 이 상품의 수익률은 현재 ―43.96%.
그는 정기예금에 돈을 넣으러 은행에 갔다가 "정기예금보다 금리도 높고 원금 손실 가능성도 거의 없는 상품"이라는 은행원의 말에 ELF에 투자했다.
이 씨는 "은행원이 상품 구조를 설명해줬지만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고, 사실 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입을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불러온 주요 요인 중 하나인 파생상품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팔린 일부 파생상품펀드가 기록적인 손실을 내고 주가연계증권(ELS) 및 ELF 등의 환매연기 지급불능 사태가 터지는 등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위험 고지를 하지 않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작정 상품을 판매한 금융기관이나 복잡한 상품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덥석' 가입하는 투자자 모두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잘못된 투자 문화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판매자도 투자자도 모르고 사고팔아
부산에 사는 이 모(46)씨는 2005년 정기예금을 해약해 마련한 돈 3억 원을 모두 파생상품 펀드에 투자했다. 이 상품의 현재 수익률은 약 ―40%. 이 씨는 "당시 은행원은 안전한 국공채에 투자하기 때문에 원금 손실이 날 확률이 '대한민국이 망할 확률'과 같은 상품이라고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이 펀드의 포트폴리오에는 최근 유동성 위기에 빠진 미국 금융회사들의 주식이 포함돼 있었다. 이 모 씨의 주장대로라면 은행 측은 상품의 리스크에 대해 전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발생한 파생상품 투자 실패사례를 보면 투자자와 판매자 모두 복잡한 상품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품을 판매한 은행, 증권사들은 거꾸로 투자자들의 묻지마식 투자 행태를 문제삼는다. 국내 한 증권사 지점의 차장은 "직원들이 투자자에게 리스크를 알려주지만, 투자자 중에는 위험은 과소평가하고 높은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파생상품은 일부 소수 투자자들의 피해를 넘어 전체 국가경제 및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조짐이다. 매출 6000억 원 대의 건실한 중소기업인 태산엘시디는 최근 은행과의 통화옵션 상품 계약으로 수백 억 원 대의 손실을 입고 부도 위기에 몰렸다. 파생상품펀드 투자자들은 시중은행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공룡처럼 커져가는 파생상품 시장
국내외 내로라하는 기업들도 과거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막대한 손실을 입거나 파산했다. 이들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미리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SK증권 등 3개 기업은 '다이아몬드 펀드'를 만든 뒤, 신용파생상품을 이용해 5300만 달러를 차입해 총 8700만 달러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에 연계된 채권에 투자했다. 루피아 가치가 상승하면 이익을 얻고 하락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였지만, 예상치 못했던 동남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루피아 가치가 급락했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한 분기도 손실을 내지 않고 연평균 40% 수익률을 올렸던 미국의 헤지펀드 LTCM도 위험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파산한 사례. 모두 리스크 관리 부족, 미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 실패 이유로 지적된다.
이런 사례에도 불구하고 국내 파생상품 시장은 2000년대 초반 본격적인 증시 확장기를 맞아 파생상품의 위험성이 제대로 투자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공룡처럼 불어났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몸집만 커진 것이다.
2003년 3조5000억 원이었던 ELS 시장은 지난해 26조 원 규모로 컸고 ELF 설정액은 현재 20조 원이 넘는다. 2003년 이후 국내 증시가 호황기에 접어든 것도 시장을 키우는 데 한 몫 했다. 국내 ELS와 ELF의 발행 규모는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에야 위험성이 인식되면서 3분의 1수준으로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와 판매자 모두 이번 기회에 파생상품 투자문화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김완중 연구원은 "과거 파생상품으로 위험에 처한 기업들이 많았지만 아직도 기업의 투자 담당자, 금융권 종사자들은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연기자 chance@donga.com
이서현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