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위기설, 외국인 배만 불렸다

  • 입력 2008년 9월 12일 02시 57분


‘說’이 위기조장→ 채권값 하락→ 이달 외국인 2조 순매수

《‘9월 위기설’이 기승을 부리던 이달 초순(1∼10일) 외국인은 국내 상장 채권을 2조 원어치 이상 순매수했다. 불과 열흘 동안에 지난달 전체 순매수 규모(1조5400억 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위기설의 내용은 “외국인이 채권을 대량으로 팔고 떠난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외국인이 한국 채권을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사들인 것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갑자기 긍정적으로 변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보다는 외국인들이 채권투자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예전보다 커진 데 따른 것”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익이 커진 것은 다름 아닌 ‘위기설’ 때문이었다.》

○ 위기설로 외국인 원화 조달 쉬워져

외국인이 한국 채권을 사려면 원화를 확보해야 한다.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살 수도 있지만 그러면 환(換) 위험이 생긴다. 채권 만기 시점에 환율이 더 오르면(원화가치는 하락) 고스란히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가들은 통상 국내 은행들과 외환거래를 한다. 외국인이 은행에 달러를 빌려주면 은행은 이를 담보로 외국인에게 원화 대출을 해주는 형태다. 이때 양측은 대출 만기 시 원과 달러의 원금을 그대로 상환하는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그사이 환율이 바뀌어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금융 불안에다 위기설까지 겹치면서 문제가 생겼다. 세계적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생기면서 은행들이 달러를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 달러 조달이 힘들어진 국내 은행들은 한국 채권을 사려는 외국인들에게 달러를 수혈 받는 대신 훨씬 싼 금리로 원화 대출을 해줬다. 외국인은 싼 금리로 대출을 받아 높은 금리를 주는 채권을 사니 그에 따른 차익도 챙기고 환 위험도 피해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처럼 외국인이 달러를 빌려주는 대신 원화를 빌리며(통화스와프·CRS) 지불하는 금리는 7월 14일 연 4.35%에서 9월 2일 3.42%까지 내려갔다.

한편 위기설로 인해 국가신인도가 떨어졌고 채권 값도 하락했다. 채권 지표금리인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8월 1일 연 5.76%였지만 위기설이 한창 증폭됐던 9월 2일에는 6.05%까지 올랐다.

이처럼 외국인의 조달 금리는 떨어지고 국고채 금리는 오른 덕분에 외국인의 무위험 거래 차익(원화대출 금리와 국고채 금리의 차이)도 7월 약 1.5%포인트에서 9월 초 2.5%포인트까지 커졌다.

금감원 도보은 시장분석팀장은 “위기설 때문에 외국인이 싼값에 채권을 사고 돈을 번 꼴이 됐다”고 설명했다.

○ “위기설 지났다고 자만은 금물”

이렇다 보니 위기설이 지나가 버린 지금 금융계에서는 뒷얘기가 많다.

하나는 “위기설은 외국인이 유포했다”는 음모론. 외국인들이 차익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가능성 없는 괴담을 만들어냈다는 가설이다. 실제 영국의 유력 일간지인 더타임스는 최근 “한국이 검은 9월로 가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한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이런 음모론을 증폭시켰다.

또 “위기설이 위기를 막았다”는 다소 엉뚱한 주장도 있다. 위기설이 없었다면 외국인의 투자 이익이 줄었을 것이고 결국 채권도 상당 부분 팔아치웠을 것이라는 논리다.

현대증권 신동준 채권분석팀장은 “분명한 것은 외국인들이 갑자기 한국 경제에 대한 믿음이 커져서 채권을 사들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이 이번 위기설이 현실화되지 않은 것을 근거로 지금의 경제 상황을 자만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한편 11일 기획재정부는 조기 상환 등의 방법으로 국고채 만기 분산을 원활히 하고 연말에 초과 세수가 발생하면 남은 돈으로 앞서 발행한 국채를 갚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 홍권희 동아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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