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방렴 멸치 왜 비싼가 했더니…

  • 입력 2008년 8월 26일 02시 56분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나무로 말목을 박았지만 요즘은 철제 H빔과 참나무를 이용해 죽방렴을 만든다. 부채꼴이 끝나는 부분의 원통형 통발이 고기를 가두는 어항 역할을 한다. 사진 제공 롯데백화점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나무로 말목을 박았지만 요즘은 철제 H빔과 참나무를 이용해 죽방렴을 만든다. 부채꼴이 끝나는 부분의 원통형 통발이 고기를 가두는 어항 역할을 한다. 사진 제공 롯데백화점
“물 따라 통발에 드는 고기만 잡고, 가는 고기는 그냥 보내죠.” 10여 년째 죽방렴으로 고기를 잡고 있는 전대영 씨(왼쪽)가 경남 남해군 삼동면 남해교 밑 자신의 죽방렴에서 통발에 든 고기를 뜰채로 건져 올리고 있다. 사진 제공 롯데백화점
“물 따라 통발에 드는 고기만 잡고, 가는 고기는 그냥 보내죠.” 10여 년째 죽방렴으로 고기를 잡고 있는 전대영 씨(왼쪽)가 경남 남해군 삼동면 남해교 밑 자신의 죽방렴에서 통발에 든 고기를 뜰채로 건져 올리고 있다. 사진 제공 롯데백화점
■ 경남 남해 지족마을 르포

대형통발 이용 원시어업… 소량 잡혀

멸치에 상처 적고 쫄깃한 맛이 일품

백화점들 ‘추석 선물세트’ 발굴 경쟁

“애고, 달이 기울기 시작해서 오늘은 오후 늦게나 멸치를 걷어 올릴 긴데….”

22일 오전 찾은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이곳에서 10여 년째 죽방렴(竹防簾)으로 고기를 잡는 전대영(56) 씨는 “멀리서 찾아왔는데 한참 기다려야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족마을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죽방렴이라는 어법(漁法)으로 고기를 잡는 어촌이다. 요즘은 추석 대목을 앞두고 멸치잡이가 한창이다.

○ 기다림의 어법

죽방렴이란 길이 10m의 대나무 말목 수백 개를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V자로 개펄에 박고 말목 사이사이를 그물로 엮은 원시어장이다. 멀리서 보면 죽방렴은 부채꼴 모양이다.

그 부채꼴이 끝나는 부분에 대나무로 만든 대형 통발이 고기를 가두는 어항 역할을 한다. 물 흐름에 따라 통발에 든 고기만 잡고 작은 고기는 그대로 흘려보내는 친환경 고기잡이다.

미끼를 던지거나 고기를 좇아 그물로 건져 올리는 대신 죽방렴은 밀물과 썰물 때에 맞춰 하루 2차례 고기를 잡는다. 옛 조상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죽방렴은 말 그대로 ‘기다림의 어법’인 셈이다. 죽방렴으로 고기를 잡는 어가(漁家)는 채 50곳이 되지 않는다.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전 씨는 “이제 슬슬 고기가 찼겠다”며 남해교 밑에 있는 자신의 죽방렴으로 배를 몰았다. 지난주만 해도 오후 2시면 통발을 걷었지만 썰물 때가 늦어졌다.

불과 몇 시간 전 교각을 휘감은 채 흐르던 물기둥은 바다 밑 돌이 훤히 보일 정도로 낮아졌다. 전 씨의 죽방렴 위엔 하얀 백로가 물속 먹잇감을 노리며 앉아 있었다. 전 씨는 성큼성큼 통발 안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뜰채로 조심스레 고기를 걷어 올렸다. 뜰채 안에는 멸치 말고도 요즘 제철인 전어 꽁치 도다리 장어가 가득했다. 전 씨는 “번거롭지만 그물 대신 뜰채로 걷어 올려야 멸치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상처도 덜 입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죽방렴 멸치는 그물로 잡은 멸치보다 값이 최고 20배 비쌀 정도로 국내 최상급”이라며 “지족해협의 강한 물살에 단련된 쫄깃한 육질이 일품”이라고 자랑했다.

○ 숨겨진 명품 먹을거리를 식탁 위로

롯데백화점은 추석(9월 14일)을 앞두고 유통업계 처음으로 죽방렴 멸치를 직접 조달해 선물세트로 선보일 예정이다. 수산물 선물세트에서 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80%에 이르지만 로하스(LOHAS·개인의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방식)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반영해 올해는 죽방렴 멸치를 내세우겠다는 복안이다.

죽방렴 멸치는 아직 입소문이 많이 나지 않아 프리미엄 먹을거리 발굴에 목말라 있던 백화점으로선 ‘숨은 명품’이었다. 하지만 어획량이 적어 대규모 상업화가 힘들다는 이유로 이곳 어민들이 백화점 납품에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이들을 일일이 방문해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후문.

다른 백화점들도 상품기획자(MD)가 직접 산지(産地)에서 발굴한 신선 식품들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상반기(1∼6월) 미니오렌지 대게 단호박 등을 해외 산지로부터 직접 조달해 상대적으로 싼값에 내놓았다. 신세계백화점도 태국 현지에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정도 크기의 새우 농장을 운영하며 가격을 종전보다 30% 낮췄다.

남해=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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