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집유]‘이재용 경영권 편법승계’ 논란 부담 덜어

  • 입력 2008년 7월 16일 20시 00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넘겨주려고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저가 발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법원은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민병훈)는 16일 삼성 사건의 핵심인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 관련해서는 조준웅 특별검사의 기소가 잘못됐다고 보고 이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에 대해서는 시효가 지났거나 유죄 입증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 전 회장은 앞으로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의 부담을 덜게 됐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보고 있다.

재판부는 그러나 차명 주식 거래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일부 포탈 혐의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이 전 회장 등 피고인들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삼성에버랜드 사건 무죄선고=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에버랜드에 손해를 끼치도록 했다는 특검의 공소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1996년 12월 에버랜드 지분을 갖고 있던 법인주주 등이 전환사채 인수권을 실권한 뒤 이를 재용 씨 등이 주당 7700원에 대량 인수해 주식으로 바꿔 이 회사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에 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봤지만 "이 전 회장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배임의 잘못이 있다면 에버랜드 기존 주주로서 전환사채 인수권을 갖고도 이를 포기한 삼성 계열사 등의 경영진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막대한 이익이 나올 수 있는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해 결과적으로는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경영 판단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검찰의 에버랜드 사건 수사 때와 허태학, 박노빈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한 법원 재판 때부터 유지돼 온 삼성 측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특검도 재판부가 지적한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개별 법인들을 기소할 수도 없었다. 개별 법인들을 기소하기 위해 배임으로 인한 손해액 역시 법인 별로 따로 계산할 경우 손해액이 줄어들게 되고 손해액이 작아지면 공소시효를 넘기게 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배임 혐의와 관련한 이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검찰과 특검이 가장 우려하던 결과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따라 대법원에 계류 중인 에버랜드 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삼성SDS 사건 공소시효 지나=상속세 및 증여세법 규정, 삼일회계법인 평가서 등을 근거로 삼성SDS의 적정 주식 가치를 평가했을 때 삼성SDS가 입은 손해는 최대 44억 원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SDS의 손해액이 50억 원을 넘지 않게 돼 해당 혐의의 공소시효(10년)를 적용할 수 없게 된다. 손해액 5억 이상 50억 원 미만의 범죄에 해당돼 공소시효 7년이 적용된다.

그러나 신주인수권이 1999년 2월 26일 발행됐고 특검의 공소제기는 올 4월 17일 이뤄져 공소시효(7년)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 형사처벌은 불가능해진 것이다.

특검은 주당 5만5000원이라고 판단하고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특검이 산정한 주당 가격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양도소득세 포탈 일부 유죄=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려면 피고인이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세금을 피하려 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1998년 12월 31일 이전에 차명으로 주식을 취득한 뒤 해당 주식을 양도한 경우에는 '주식의 양도와 양도소득세 미신고'를 했을 뿐 범죄가 될 만한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봤다.

그러나 1999년 1월 1일 이후에 취득한 차명 주식 거래에 대해서는 "다수의 차명계좌 이용과 계좌 사이의 연결을 차단하려는 현금입출금 거래"가 인정돼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의한 적극적인 세금 회피라고 봤다.

양도소득세 포탈이라는 특검의 혐의에 대해 일부 무죄가 인정돼 포탈 세액이 줄어들면서 공소시효 역시 7년에서 5년으로 줄어들었다.

재판부는 그래서 2001년과 2002년 포탈세액을 제외하고 2003년 이후 포탈 세액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결국 재판부는 조세포탈 혐의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이 전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이종식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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