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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6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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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벤처 1세대인 미래산업(반도체 검사장비 제조업체). 현재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상장을 폐지하기 위한 작업을 쓸쓸히 진행하고 있다. 1999년 두루넷에 이어 국내 기업으로는 두 번째로 나스닥에 상장된 지 9년 만이다. 두루넷도 2003년 상장 폐지됐다. 미래산업 관계자는 “나스닥에서 하루 거래되는 물량이 전체 발생 주식의 0.1%가 채 안 되는 데다 상장 관련 비용이 연간 7억∼10억 원이나 들어 도저히 상장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래산업의 당기순이익은 7억 원으로, 상장 유지비용이 한 해 이익과 맞먹는다. 》
이 관계자는 “나스닥 상장 초기에는 1300억 원가량의 자금을 조달하는 등 효과를 봤지만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고 기업 실적도 나빠지면서 거래가 급감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며 화려하게 나스닥에 입성했던 벤처기업들이 연이어 퇴출되고 있다. 이는 쇠락하는 벤처기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상장 초기 대비 대부분 주가 곤두박질
3일 한국증권선물거래소와 증권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국내 기업은 미래산업을 포함해 웹젠, G마켓, 그라비티, 픽셀플러스 등 5개다. 하나로텔레콤, 두루넷, 이머신즈, 와이더댄은 나스닥에 상장됐지만 줄줄이 퇴출됐다.
하나로텔레콤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상장을 폐지했는데 당시 하루 거래되는 주식이 수천 주에 불과해 상장한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국 보험에 가입하고 변호사, 회계사를 통해 영문 공시 서류를 만드는 등 상장 유지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합치면 연간 10억 원이나 들어 부담이 너무 컸다는 것. 2000년 상장 당시 15달러가량이던 주가는 지난해 10달러로 떨어졌다.
현재 상장된 기업들도 대부분 고전하고 있다.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2일 종가 기준으로 상장일보다 주가가 오른 기업은 G마켓(15.1달러→25.2달러)뿐이다. 그라비티(12.59→1.46) 웹젠(6→3.42) 픽셀플러스(32.04→1.86)는 주가가 절반 가까이 떨어지거나 1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들이 고전하는 것은 IT 버블이 꺼진 후 기업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지 못해 실적이 악화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미래산업은 2005년(19억 원)과 2007년(17억 원)에는 영업이익을 냈지만 2004년(―72억 원)과 2006년(―130억 원)에는 큰 규모의 영업 손실을 냈다.
○ 헤지펀드 운용자들이 경영진 질타
나스닥에 진출한 기업들은 한국과 다른 미국의 투자 현실에서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기도 한다.
그라비티는 2005년 회사 측에서 발표한 전망보다 실적이 낮게 나오자 주가가 급락했다. 이에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해 결국 지난해 12월 50억 원을 주고 합의했다. 2006년에는 헤지펀드 운용자들이 경영 실적에 불만을 제기하며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경영진을 질타하기도 했다.
그라비티 관계자는 “상장 유지비용으로 연간 10억 원이나 들지만 하루 거래량은 전체 주식의 0.01% 수준인 데다 주가도 지지부진해 과연 이만큼 비용을 치를 정도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상장폐지를 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 “해외 증시 진출 효율성 면밀히 따져야”
나스닥에 진출한 기업들과 달리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기업은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현재 NYSE에 상장된 국내 기업은 8개로 이 중 포스코는 1994년 상장 당시 37.25달러였던 주가가 2일 현재 139달러로 올랐다.
신한금융지주(31.4달러→99.04달러)와 우리금융지주(16.25→55.26)를 비롯해 LG디스플레이(14.05→21.54) SK텔레콤(13.84→22.22) 국민은행(25.74→61.8)도 상장 때보다 주가가 상승했다.
상장일보다 주가가 내린 기업은 KT(27.56→22.33) 한국전력공사(19.63→15.86) 등 2개다.
증시 전문가들은 해외증시에 진출할 때는 이에 따른 손익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