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7년 11월 28일 03시 0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이런 삼성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촉발된 삼성의 불법·비리 의혹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신 삼성의 관리 대상으로 의심받고 있는 검찰이 특별수사·감찰본부를 출범시켰으며 국회도 일사천리로 삼성 특검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거부권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여론의 눈치를 보던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삼성 사태’로 명명될 수 있을 이 초대형 비리 의혹사건은 20여 일밖에 남지 않은 대선조차도 가려 버릴 태세다.
삼성 사태의 파장은 한 기업집단의 운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이 흔들리면 한국이 위태롭다는 경제위기론으로 이 사태를 호도하거나 축소하려는 것은 단견에 불과하다. 삼성 사태를 처리하는 방식은 어쩌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는가보다 우리의 미래에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시장경제 원칙 무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는 이 사태의 핵심은 삼성이 국가 안의 국가가 되려 했다는 의혹으로 압축된다. 용두사미로 흐지부지된 삼성 X파일 사건 때 유행하던 ‘삼성공화국’이란 말에 이어 ‘삼성제국’이 운위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삼성의 나라’로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386 실세이기도 했던 전 대통령법무비서관 이용철 변호사의 삼성 뇌물 반환에 관한 증언은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라는 광고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보여 준다. ‘삼성이 업무와 직접 관련해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요소요소에 미리 깔아 놓는 것’이라는 일각의 말도 ‘관리의 삼성’임을 입증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진화가 이를 용납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에 이은 ‘2007년 체제’의 출범은 나라를 이루는 세 개의 기둥인 국가, 시장, 시민사회가 이제 각기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발전국가가 자본의 도입과 배분을 좌우해 압축성장을 밀어붙인 것이 1987년까지의 상황이었다면, ‘87년 체제’는 점차 민주화되어 가는 국가 옆에서 자본이 힘을 기르는 과정이었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 대통령의 말과 동행한 삼성의 초비대화(超肥大化)는 이 과정의 완결판이다.
대통령 선거판의 난맥상에서 보듯 정당정치의 퇴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지난 20년간 국가의 민주화는 괄목할 만했다. 그러나 비약적으로 확대된 자본의 힘이 합리적 시장경제의 준칙을 무시할 뿐 아니라 국가와 시민사회까지를 통제하려 한 것이다. 그것이 삼성 사태의 본질이다. 이는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화하고 참여정부에서 절정에 이른 국가와 시민사회의 유착, 즉 국가가 시민사회를 동원하고 시민사회 일부가 국가에 부역한 현상과 함께 나라의 틀에 대한 최대 위협이다.
강력하지만 민주적인 국가, 합리적이고 투명한 시장,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시민사회가 서로 견제하는 가운데 균형을 이루어야 좋은 나라가 된다. 삼성 사태는 이런 균형이 깨졌다는 명백한 신호다. 특별검사는 날카롭고 단호한 수사로 실추된 공권력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언론을 포함한 시민사회도 판관(判官)으로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문제 해결 열쇠는 삼성에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사태의 키는 삼성이 쥐고 있다. 자신의 과대 권력화가 더는 진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삼성은 인정해야 한다. 삼성이 잘못되는 것을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천민 자본의 낡은 껍질을 벗고 합리적 시장경제의 선두 주자로 삼성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금의 삼성 사태는 아마 그 마지막 계기일 것이다.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를 증명할 주체는 바로 삼성이다.
윤평중 객원논설위원·한신대 교수·사회철학 pjyoon56@kornet.net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