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만한 분들이지만…” 지갑속 논란 계속될 듯

  • 입력 2007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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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와 조선시대 여류 서화가(書畵家) 신사임당이 2009년 발행될 예정인 10만 원권과 5만 원권의 초상 인물로 각각 결정됐다.

고액권 화폐도안 자문위원회 의장인 이승일 한국은행 부총재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구, 안창호, 신사임당, 장영실 등 최종 후보 4명을 놓고 정부와 협의한 결과 김구와 신사임당을 초상 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본보 10월 22일자 A1면 참조

▶ 고액권 초상인물 최종후보 4명 압축

이 부총재는 “독립애국지사의 상징성을 지닌 김구는 뛰어난 실천력과 포용력을 갖춘 인물로 통일의 길을 모색한 지도자이고 신사임당은 여성 문화예술인으로 우리 사회의 양성(兩性) 평등의식 제고와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라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여성 위인 중 처음으로 우리 지폐에 새겨지는 신사임당과 5000원권 도안 인물인 아들 율곡 이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모자(母子) 화폐 초상 인물’이 된다.


▲ 동영상 촬영 : 전영한 기자

그러나 한은의 인물 선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은 데다 초상 인물의 적절성에 대한 비판 여론도 적지 않아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결정했나

한은은 올해 5월 역사학자 철학자 등 전문가 10명으로 이뤄진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1차 후보 20명을 선정한 뒤 8월 일반 여론조사 등을 통해 2차 후보 10명을 발표했다.

자문위원회는 이 가운데 김구, 안창호, 신사임당, 장영실 등 4명으로 최종 후보를 압축했다. 독립운동가가 2명 포함되면서 또 다른 유력 여성 후보인 유관순은 제외됐다.

독립운동가인 김구와 안창호, 여성계와 과학계를 각각 대표하는 신사임당과 장영실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 구도였다고 자문위 관계자는 전했다.

김구와 안창호는 독립운동가로서 모두 지명도가 높았지만 여론조사에서 김구가 더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관순이 탈락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사임당이 유일한 여성 후보로 떠올랐다.

○인물 선정 타당성 논란

김구와 신사임당은 모두 훌륭한 사람이지만 이들이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선 자문위원회 내부에서도 논란이 됐다.

한 자문위원은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는 문제가 없지만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한 데다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방북했다는 점 때문에 위원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할 때 1948년 백범이 평양으로 가면서 거쳤던 육로를 이용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내심 김구를 미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사의 인물을 국민 모두가 사용하는 지폐의 초상 인물로 선정한 것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여성단체는 신사임당에 대해서도 마뜩잖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부장적 사회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현모양처 여성상이 채택된 것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선정 절차도 매끄럽지 않아

자문위원회 명단을 비공개로 하고 이들이 1차로 선정한 20명의 명단을 발표하지 않은 점도 매끄럽지 않은 대목이다.

한은은 “자문위원 명단이나 회의 일정, 개별 인물 후보에 대한 자문위의 평가 등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자유로운 논의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해 중앙은행이 취할 태도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지폐의 실제 사용자인 국민은 한은과 자문위원들이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후보들을 평가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누리꾼들의 여론을 알아본다며 홈페이지에 자유게시판을 운영하다 특정인을 지지하는 의견이 대거 오르자 ‘없었던 일’로 한 것도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초상 인물을 미리 정해 놓고 요식 행위로 심사 절차를 밟은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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