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별 입사선호 No2]<24>롯데쇼핑…보수색채와 합리성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00분


《#1.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과 붙어 있는 롯데빌딩. 롯데쇼핑을 비롯해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는 이 건물에 들어가면 요즘 보기 어려운 광경이 눈에 띈다.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여성 직원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별로 어떤 회사와 부서가 있다는 안내와 함께 층 번호 버튼을 대신 눌러 준다. ‘엘리베이터 걸’이다.

#2. 오전 출근 시간 같은 건물. 롯데 임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1층 로비에 몰려든다. 임직원들은 도착한 순서대로 줄을 서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임직원 중에는 머리가 희끗한 계열사 사장은 물론 롯데그룹의 후계자가 확실시되는 신동빈 부회장도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를 먼저 타겠다고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다른 재벌 기업은 물론 관공서에서조차 총수나 기관장이 오면 바로 탈 수 있도록 비서진이 ‘엘리베이터 잡기’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본사 사옥보다는 매장 넓혀라” 실용주의로 똘똘 뭉쳐

辛 회장 ‘한식구 철학’… 창사 이래 구조조정 40여 명뿐

롯데그룹의 간판 기업인 롯데쇼핑은 엘리베이터 걸로 대변되는 ‘전근대성’과 백화점을 찾는 고객 편의를 위해 오너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타는 ‘합리성’이 공존하는 기업이다. 겉으로 보면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내수(內需) 기업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국내 어느 기업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실용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백화점-마트-슈퍼-시네마-크리스피크림…

롯데쇼핑은 국내외에 백화점 24곳과 대형 할인점 54곳, 슈퍼마켓 71곳을 보유한 종합 유통업체. 여기에다 롯데시네마 사업본부 소속 극장 39곳과 크리스피크림도넛 매장 25곳도 함께 운영하며 연간 매출이 10조 원에 이르는 거대기업이다.

하지만 본사 직원이 한꺼번에 근무하는 번듯한 사옥이 없다. 사업본부별로 건물을 임차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백화점과 크리스피크림도넛 사업본부가 있는 롯데빌딩은 호텔롯데 소유다. 롯데마트 사업본부도 서울 광진구 구의동 동서울터미널에 세를 들어 있다가 2003년 6월에야 롯데마트 월드점 6층으로 옮겼다. 이 건물도 호텔롯데와 롯데쇼핑 공동 소유다.

롯데슈퍼와 롯네시네마 사업본부는 지금도 개인이 주인인 건물을 임차해서 사용한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매출과 직결되는 매장을 최대한 넓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원 부서가 있는 사무 공간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평소 소신이 반영된 결과”라며 “격식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롯데문화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름철‘쿨비즈’캠페인 매출에도 한 몫 톡톡

올해 6월부터 9월까지 이철우 롯데백화점 대표가 펼친 ‘쿨 비즈’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

쿨 비즈는 ‘시원함’과 ‘멋짐’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Cool’과 비즈니스(Business)의 약어인 ‘Biz’가 합쳐진 말로 넥타이를 매지 않는 간편한 옷차림을 일컫는다.

롯데백화점은 여름철에는 정장 차림보다는 간편 복장으로 근무하는 것이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이 캠페인을 기획했다. 복장이 간편해지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4개월에 걸친 캠페인 기간을 통해 롯데백화점은 월 1억 원씩 모두 4억 원가량의 냉방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 또 이 캠페인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생긴 쿨 비즈 상품 열기로 인해 관련 상품 매출이 전년 대비 40% 상승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었다. 여기에다 상대적으로 참신해진 직원들의 아이디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효과였다고 롯데백화점은 설명했다.

롯데쇼핑은 1979년 창사 이후 인력 구조조정을 두 번밖에 하지 않았다.

첫 번째는 국내 모든 기업이 대량 감원을 하던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두 번째는 올해 5월로 인사 고과가 3년 이상 최하점을 받은 과장급 이상 직원 30여 명이 옷을 벗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대부분의 기업이 수시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롯데쇼핑 정규직 직원이 8500여 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원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롯데쇼핑이 감원을 잘 하지 않는 것은 신 회장의 ‘한 식구’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신격호 회장은 평소 “회사와 경영자, 그리고 종업원은 한 식구다. 조금 어려워졌다고 종업원을 내보내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종업원의 신분이 안정돼야 애사심도 높아지고 좀 더 소신 있게 일을 할 수 있어 회사로서도 이익이 된다는 것.

박종렬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롯데쇼핑 직원은 큰 과오만 없으면 감원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 다른 회사에 비해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소신 있게 일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다만 급여가 경쟁사에 비해 다소 낮다”고 말했다.

“남성위주 탈피…여성사원 정책적 배려”

롯데쇼핑은 지나치게 신중한 기업 문화로 일을 그르친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까르푸’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것. 이랜드그룹이 오너의 지휘 아래 과감한 베팅을 해서 낙찰된 것과 달리 롯데는 오너를 정점으로 한 신중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다가 할인점 시장에서 이마트를 따라붙을 기회를 놓쳤다.

당시 유통업계에서는 “자금력이 월등히 앞선 롯데가 방심하다가 선수를 빼앗긴 것은 지나치게 심사숙고하는 롯데 문화가 한 방 먹은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남성 위주 기업문화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롯데쇼핑은 여성이 주요 고객이지만 신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백화점 총괄 부사장을 빼고는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다. 실무 간부진인 팀장(차장이나 부장)급에서도 여성을 찾아볼 수 없다. 섬세한 여성 심리를 꿰뚫어야 할 유통업체로서는 보기 드문 조직구조다.

물론 경쟁사인 신세계도 여성 고위 간부가 드물다. 하지만 아예 없는 롯데와 달리 여성 임원(오너 일가 제외)이 2명, 여성 부장이 5명 정도 근무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과거에는 남성 위주로 대졸 신입사원을 뽑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대졸 신입사원의 절반가량이 여성”이라며 “특히 요즘에는 여성 사원을 정책적으로 많이 배려하고 있어 앞으로는 여성 임원이나 팀장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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