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사외이사 꿰찬 ‘스틸파트너스’ 日서 ‘기업사냥꾼’ 낙인

  •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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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인 스틸파트너스를 악의적 기업사냥꾼으로 낙인찍고,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인수합병(M&A) 공세에 제동을 걸었다.

적대적 M&A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수단이 없어 일각에서 ‘헤지펀드의 먹튀(주가를 띄워 차익을 챙긴 뒤 철수한다는 뜻) 각축장’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도쿄(東京)고법은 9일 스틸파트너스가 일본의 식품업체인 불독소스의 신주예약권 발행을 정지시켜 달라며 낸 재항고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불독소스는 스틸파트너스를 제외한 모든 주주에게 신주예약권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됐다.

불독소스에 대한 주식공개매수(TOB)를 진행 중인 스틸파트너스 측은 “예상 밖”이라며 깊은 충격에 빠졌다. 반면 일본 정부와 기업계는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스틸파트너스는 중단기적으로 해당 기업의 주식을 전매(轉賣)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남용(濫用)적 매수자”라고 규정했다. 일본 사법부가 ‘남용적 매수자’ 규정을 실제로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부당한 주식 매수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할 목적이라면 매수자를 차별 대접해도 ‘주주 평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으로 스틸파트너스는 물론 다른 헤지펀드들도 일본에서 단기차익을 노린 M&A공세를 펴기 어렵게 됐다.

스틸파트너스는 2002년경 일본에 진출한 뒤 지금까지 30여 개 일본 기업의 주식을 사 모았다. 특히 불독소스에 앞서 즉석라면업체인 묘조식품과 3위 맥주업체인 삿포로홀딩스에 대해 적대적 M&A 공세를 폈으나 해당 기업의 반발로 경영권 장악에 실패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과 연합해 KT&G의 경영권을 압박한 바 있다.

스틸파트너스의 워런 리히텐슈타인 대표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여 KT&G의 사외이사로 입성했다. 그는 최근 KT&G가 신한지주의 주식을 사들이자 경영진에게 e메일을 보내 “주가를 올릴 수 없으면 회사를 팔든지 물러나야 한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칸 측은 지난해 12월 KT&G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 1400억 원을 챙겼다. 경영권 압박의 진짜 목적은 ‘먹튀’였던 셈이다.

한국 정부는 “경영권 불안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기업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일본처럼 신주예약권 발행 등을 허용해 달라”는 경제계의 요구를 묵살해 왔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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