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통합법, 은행-증권사의 사생결단

  • 입력 2007년 4월 21일 03시 01분


“이 법이 가져올 변화의 폭은 1986년 영국 ‘금융 빅뱅’의 10배는 될 것이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당시 차관보)은 지난해 2월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안(자본시장통합법)’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법은 ‘증권사 소액자금이체(지급결제) 허용’ 조항을 놓고 은행과 증권업계가 팽팽히 맞서면서 현재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금융소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6월까지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의미와 ‘지급결제 관련 쟁점’을 라운드업 한다.

○ ‘금융 장벽 허물기’가 핵심

이 법의 취지는 증권중개, 자산운용, 선물, 신탁 등 금융업종 간의 장벽을 없애는 데 있다.

현재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종합금융회사, 신탁회사 등으로 나눠져 있는 금융업을 금융투자회사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이다. 증권사가 자산운용이나 선물투자 등 여러 업무를 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로서는 한 금융회사에서 펀드 가입, 투자 자문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

고객 보호 장치도 대폭 강화돼 금융회사가 고객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아 원금 손실이 생기면 손해액을 배상해야 한다.

이 밖에 금융상품 관련 규제가 포괄주의로 바뀌면서 날씨나 실업률 등을 대상으로 한 파생금융상품 개발이 가능해진다.

○ ‘지급결제’ 허용 여부 놓고 충돌

자본시장통합법이 규정한 지급결제는 금융결제원 전산망(은행망)을 통해 자금을 이체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현금지급기 입출금 △공과금 납부 △자동이체 △신용카드 결제 등으로 구분된다. 수표 발행, 어음 교환 등 신용 관련 서비스는 대상이 아니다.

은행과 증권사는 지급결제 기능을 증권사에 확대하는 방안과 관련해 △결제 시스템의 안정성 △지급결제 업무 성격 △금융 및 산업 분리원칙 등의 쟁점에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르면 증권사는 ‘증권금융’이라는 대표 금융기구와 대행은행을 통해 은행권 결제망에 접속해 자금이체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은행만이 지급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증권사는 은행의 가상계좌를 연결해 간접적으로 서비스할 뿐이다.

은행 측은 증권사가 고객예탁금을 받아 증권금융에 예치하기까지 만 하루가 걸리는 문제가 있어 증권사가 도산하면 결제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증권사가 도산해도 대표 금융기구인 증권금융이 결제 부족 자금을 전액 지원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또 한국은행과 시중은행은 ‘지급결제가 은행 고유 업무’라고 하지만, 증권사 측은 ‘지급결제는 고객을 위한 서비스 업무’라고 반박한다.

이 밖에 지급결제 허용으로 증권사 소유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이 가능해진다는 은행 측 주장에 대해 증권업계는 대출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은행업 진출과는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 “은행 수익성 저하” vs “영향 적을 것”

은행권은 증권계좌의 자금이체가 허용되면 은행 고객 중 상당수가 증권사로 이동해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힘들어져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금융감독 당국은 지급결제 업무 개편으로 은행에서 증권사로 이동하는 자금이 최대 4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요구불예금과 대출금리 간의 차이(예대마진)를 5.7%로 가정할 때 은행으로선 2565억 원가량 이익이 줄어든다.

미국에선 증권사에 지급결제 기능이 없다는 지적도 은행권에서 나온다.

이에 대해 증권연구원은 “미국에선 증권사가 은행을 자회사로 소유할 수 있어 굳이 증권사가 지급결제 기능을 따로 가질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이 금융업 간의 벽을 허물어 대형 투자은행(IB)을 육성하고 투자자 보호 시스템 및 편익을 대폭 강화하는 것인데도, 이해당사자들이 부수적인 사안인 지급결제 업무 허용 여부를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홍익대 전성인(경제학) 교수는 “이 법에는 무리한 투자로 금융투자회사가 파산할 경우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지급결제 허용 여부보다 투자자 보호 대책 보완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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