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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4월 1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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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과 언론이 들고일어났다. “아시아의 그렇고 그런 나라 한국의, 이름도 생소한 이류 기업이 선진국 프랑스의 세계적 기업을 인수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아우성을 쳤다. 1996년 대우가 프랑스의 톰슨멀티미디어(TMM)를 인수하려 하자 프랑스에서 벌어진 소동이다.
180도 변한 프랑스
부실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나선 프랑스 정부는 대표적 전자회사인 TMM을 매각하기로 하고 대우전자를 인수 업체로 선정했다. 여러 기업의 인수 계획을 받아 장기간의 심사와 협상을 거친 뒤 내린 정상적 결정이었다. 그런데도 프랑스 정부의 공식 발표 이후 두 달이 넘도록 ‘한국 때리기’가 계속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 언론은 대우의 기술 수준이 TMM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을 싸구려 상품과 부도덕한 졸부의 나라로 싸잡아 매도했다.
프랑스 정부는 그해 12월 TMM 민영화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여론에 밀려 국제적 약속을 깬 것이다. 결국 대우의 TMM 인수는 무산되고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커다란 상처만 남겼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프랑스가 180도 다른 얘기를 들고 나온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저서 ‘미래의 물결’에서 한국을 드높이 치켜세웠다. 그는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를 비롯한 11개국이 머지않아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면서 한국을 포함시켰다.
아탈리의 한국 미래 전망은 특히 장밋빛이다. “일레븐에 속하는 나라 중에서는 한국이 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한국의 1인당 총생산은 지금부터 2025년까지 2배로 증가할 것이다. 한국은 경제, 문화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을 것이며 한국의 기술력과 문화적 역동성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한국적 모델은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성공적인 모델로서 점점 더 각광받을 것이며 심지어 일본에서조차도 미국식 모델 대신 한국식 모델을 모방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다.”
석학만 변한 게 아니다. 프랑스 정부도 변했다. 프랑스 무역장관과 투자진흥청장 등 고위 인사가 줄줄이 한국을 찾아 교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을 찾았던 클라라 게마르 투자진흥청장은 “한국이 프랑스를 선택하면 유럽에서의 성공을 보장한다”며 한국 정부와 기업의 투자를 간곡히 호소했다.
프랑스의 한국 무시가 왜 치켜세우기로 급변했을까. 다소 과장된 평가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상승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은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프랑스 경제는 신통치 않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프랑스를 ‘새로운 유럽의 환자’라고 진단했다. 그러니 프랑스 눈에 한국이 점점 더 대단한 나라로 비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0년 뒤를 기대한다
프랑스의 무력증은 대선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무려 12년간 우파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집권했다. 이쯤 되면 바꿔 보자는 열풍이 몰아쳐야 정상이다. 시라크가 나라를 잘 다스려 프랑스의 현재가 만족할 만하다면 모르지만 불만투성이인데도 야권의 도전은 별로 거세지 않다. 심드렁한 유권자들의 모습에서 별로 개선되지 않을 프랑스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국력이 수시로 변하는 세상이다. 10년쯤 뒤에 한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앞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언뜻 보이는 것 같다. 단초는 프랑스인이 제공했다. 그들에게 진 빚을 그대로 갚을 날이 오기를 꿈꿔 본다. “프랑스 기업이 어딜 감히…”라고.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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