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시대,글로벌 법률산업 ‘빅뱅’]<5>사내 변호사군단

  • 입력 2007년 4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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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인 ‘구글’이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 인수를 추진하던 지난해 10월. 세간에서는 “구글의 성장이 유튜브의 저작권 침해 문제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랐다. 그러나 구글의 최고법무책임자(CLO)인 데이비드 드러먼드 부사장은 “법률적 검토 결과 얻는 게 잃는 것보다 많다”며 16억5000만 달러 규모의 인수 건을 밀어붙였다. 한 식구가 된 구글과 유튜브는 최근 바이아컴으로부터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10억 달러의 소송을 당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드러먼드 부사장이 법적인 지식을 앞세워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거액의 소송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구글에 대해 투자회사인 UBS의 벤저민 스케처 애널리스트는 “구글의 거침없는 대응은 비즈니스에서 법적 분쟁의 해결방식을 잘 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에 법을 아는 기업과 모르는 기업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중심에는 기업에 소속돼 활동하는 사내변호사(in-house counsel)들이 있다.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사내법무팀이 ‘로펌 간 경쟁에서 밀린 변호사들의 피난처’라는 인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사내변호사는 이제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전위부대로 그 힘을 키워가고 있다.

▽로펌보다 큰 사내법무실=다국적 기업들의 사내법무팀 규모는 웬만한 중견 로펌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씨티그룹이 거느린 사내변호사는 무려 1500명.

‘2006 인사이드 카운슬’ 조사에 따르면 GE(1164명)와 엑손모빌(600명), 도이체방크(442명) 등 사내변호사가 100명 이상인 기업은 79개에 이른다. 세계 1위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조차 사내변호사가 10명이 되지 않는 한국 기업의 실정과는 크게 다르다.

8000개 회사 내 2만 명의 변호사를 거느린 미 사내변호사협회(ACC)의 규모도 해마다 커지는 추세.

기업법무실의 ‘몸집 불리기’는 2002년 7월 미국에서 사베인스-옥슬리법이 제정돼 기업 투명성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가속화됐다. 엔론과 월드컴의 회계부정 사건 이후 기업들의 경각심이 높아진 점, 소송 규모가 커지는 점 등도 영향을 미쳤다. GE는 거의 모든 결재서류에 법무 담당자의 서명란이 있을 정도다.

과거 제약회사와 보험, 금융 분야에 몰려 있던 사내변호사들의 활동이 최근 각종 지식재산권 분쟁으로 시끄러운 정보기술(IT) 분야 등으로 확대되는 것도 특징이다.

글로벌 로펌인 화이트&케이스의 마이클 퀴글리 변호사는 “로펌 변호사는 사내변호사의 회사 충성도나 업무 효율성, 회사의 경영방침에 대한 이해도나 기밀정보의 접근성을 따라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법이 무기다=한국IBM 법무실의 데이비드 워터스 상무는 거래 계약서를 검토할 때 중국 상하이(上海)나 싱가포르에 있는 선배 변호사들에게 수시로 자문한다. 본사를 포함한 전 세계 IBM 지사 소속 변호사들이 사내 인트라넷에 올려놓은 정보도 참고한다. 워터스 상무는 “해외에서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선배 변호사들의 글로벌 노하우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글로벌 법률 네트워크는 사내법무팀 강화에 주력해 온 대기업들의 최대 강점 중 하나. 국경을 넘나드는 인수합병(M&A) 건의 경우 각국에서 축적한 정보와 조언들이 총동원된다. 극비리에 업무가 추진되는 초기 단계에는 외부 로펌을 고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내변호사의 의견은 더 빛을 발하게 된다.

씨티그룹이 멕시코의 바나멕스 은행이나 ABN암로의 사업 일부를 인수할 때에는 이들 은행이 진출한 각국의 씨티그룹 소속 변호사들이 총동원됐다.

기업의 글로벌 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사내변호사들의 준비는 철저하다. 지난해 열린 유럽 사내변호사 법률포럼에서는 ‘미국-유럽 간 반독점법 적용의 차이’나 ‘유럽 각국 기업들의 인수합병(M&A) 관련 법률업무’ 같은 해외업무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유럽 사내변호사들은 2002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업무의 절반 이상이 국경 밖의 일”이라고 답변했다.

▽변호사에서 기업가로=사내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이들의 위상과 권한도 크게 달라졌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연봉 규모가 ‘상위 100위’에 포함된 사내 법률고문들의 평균연봉은 90만6820달러로 전년 대비 16% 늘었다. 이들은 수시로 최고경영자(CEO)에게 직보하고 중요 경영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기업윤리 차원에서 사회공헌 사업까지 법무실이 담당하고 있다.

한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지역담당 법무실 임원은 “사업성이 있어도 세금이나 법적 문제 때문에 투자를 포기하는 사례가 있다”며 “이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펼칠 때에는 우리가 가장 먼저 투입된다”고 말했다.

법적 안정성만 중시하던 소극적, 방어적 업무패턴을 벗어나 공격적인 투자를 지지하는 비즈니스형 변호사들도 많아졌다. 올해 초 내셔널 로 저널은 “기업법무실이 ‘외딴 섬’으로 소외되던 시절은 지났다”며 “사내변호사들은 이제 CEO와 함께 해외경영 확장을 위해 출장을 가고 투자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법률가 CEO 전성시대

미국의 건축자재 유통업체 홈데포가 올 1월 프랭크 블레이크 부회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했을 때 미국 언론들은 “또 한 명의 변호사 출신 CEO가 탄생했다”고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변호사 출신이 글로벌기업 리더의 자리에 속속 오르는 것은 ‘사내변호사’의 역할 강화와 맥을 같이하는 현상이다. 지난해 말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상장기업 1000개 중 69개 회사가 법대 출신 CEO를 두고 있다.

이 중 35%가 최근 5년 사이에 CEO 자리에 올랐다는 점은 최근 그 수요가 부쩍 늘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타임워너의 리처드 파슨스 회장은 미국 올버니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1970년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수석보좌관과 넬슨 록펠러 부통령의 고문 변호사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후 뉴욕의 한 로펌에서 11년간 일했다. 2000년 타임워너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1650억 달러 규모의 아메리카온라인 합병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공로로 다음 해 CEO가 됐다.

글로벌 제약회사인 화이자의 제프리 킨들러 CEO는 하버드 로스쿨 출신.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 밑에서 일했고 워싱턴 소재 로펌 근무를 거쳐 GE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했다. 각종 특허분쟁과 수천억 원대 제약 관련 소송이 잇따라 그의 입지는 나날이 탄탄해지고 있다.

그 밖에 씨티그룹의 찰스 프린스,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CEO도 각각 조지타운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

각종 법률문제와 까다로운 규제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뿐 아니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주주들의 문제 제기를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강점으로 꼽힌다.

법과 경영은 결국 같이 가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미국의 주요 대학들이 경영대학원과 로스쿨의 복수학위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한 것도 ‘법률가 CEO’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아직은 한계도 많다. 법적 안정성과 분쟁 예방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이사회나 경영진과 출동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CEO매거진의 마이클 존스 편집장은 “법무실에 틀어박혀 있기만 하고 수익 극대화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서툰 변호사도 많다”고 꼬집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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