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사건 1년만에 또… 경영정상화 제동 걸릴라”

  • 입력 2007년 3월 2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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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빨간 불 ‘비자금 사건’의 악몽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국세청의 계열사 특별 세무조사로 기업 경영에 또다시 빨간 불이 켜졌다. 홍진환 기자
현대차 빨간 불
‘비자금 사건’의 악몽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국세청의 계열사 특별 세무조사로 기업 경영에 또다시 빨간 불이 켜졌다. 홍진환 기자
지난해 3월 26일 오전 7시 반. 어스름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 100여 명이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 들이닥쳤다.

16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검찰의 현대차그룹 수사는 국내 재계 서열 2위이자 세계 6대 자동차회사의 경영난과 함께 그룹 총수인 정몽구 회장에 대한 1심 실형 선고까지 이어졌다.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3일 오전 11시. 국세청에서 특수·기획조사와 대기업 지분 변동을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들이 양재동 본사와 역삼동에 있는 글로비스 등 3개 계열사를 찾아가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했다.

▽본보 24일자 1면 참조▽

▶ 현대차 계열사 세무조사…탈세혐의 특별조사 성격

‘비자금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현대차그룹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특별 세무조사까지 받게 돼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국세청의 이번 조사는 불가피한 측면이 많지만 자칫 가뜩이나 어려움이 많은 현대차그룹과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국세청은 지난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비자금 조성 경로에 대한 일체의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데다 과세 근거에 대한 이론적 검토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져 조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그룹은 “회사에 바람 잘 날이 없다”며 침통한 분위기였다.

○ 현대차 “27일부터 또 공판인데…”

현대차그룹은 이번 조사가 특별 세무조사라는 점에 바짝 긴장하면서 사태 추이와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동아일보가 세무조사 착수 소식을 처음 보도한 24일 간부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토요일이었지만 대부분 출근해 대책을 논의했으며, 25일에도 자금팀 등 상당수 임직원이 회사에 나왔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대부분의 직원에게 세무조사를 알리지 않았지만 본보 보도 이후 평사원들까지 회사에 관련 내용을 문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검찰 조사가 끝난 만큼 국세청이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일찍 들어올 줄은 몰랐다”며 “당장 27일 정몽구 회장의 항소심 첫 공판이 예정돼 있는데 곤혹스럽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이번 조사가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경영 활동에도 제약을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과거 다른 기업에서도 세무조사가 시작되면 자금 집행과 영업망 확대 등 일상적인 업무조차 원활치 않은 사례가 많았기 때문.

현대차의 다른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인데 세무조사 대응까지 해야 해 바람 잘 날이 없다”면서 “가급적 회사 경영에 미칠 부담이 최소화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왜 3개 계열사인가

국세청 세무조사 대상인 글로비스와 엠코, 현대오토넷 등 현대차그룹 3개 계열사는 모두 검찰 수사에서 비자금 조성의 창구로 주목을 받은 곳이다.

물류회사인 글로비스는 설립 6년 만에 매출 2조 원에 육박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그룹 차원의 ‘물량 밀어주기’ 의혹이 제기돼 왔다.

현대차 안팎에서는 글로비스의 운송 단가 인상 등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점에 주목해 지난해 부당내부거래조사에 착수했다.

엠코도 2002년 그룹의 건설 전문 계열사로 출범한 뒤 국내외 49개 현장에서 공사를 따내는 등 그룹 내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사세(社勢)를 키워 왔다.

국세청은 그간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과세에 대해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견해를 보였지만 검찰 수사에서 비자금과 관련한 연관성이 드러난 만큼 세금 추징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전직 국세청 관계자는 “과세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세무조사에 착수했다는 건 국세청 내부적으로 ‘기술적 판단’을 끝냈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자동차용 전자기기 생산업체인 현대오토넷은 지난해 계열사인 본텍과 합병하는 과정이 공정했는지가 이번 세무조사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가 합병할 때 삼일회계법인이 평가한 본텍의 가치는 주당 23만3000원. 2005년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본텍 지분 30%를 독일 지멘스에 넘길 때 주당 9만50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해 2배가 넘는다. 합병 과정에서 본텍의 지분을 갖고 있던 글로비스는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 현대차 경영정상화 늦어지나

이번 국세청 세무조사는 검찰 수사로 발목이 잡힌 현대차의 경영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계열사 밀어주기’가 세법상 위법행위로 간주되면 글로비스나 엠코는 증여세를 추징당한다.

국세청이 만약 부당내부거래에 따른 ‘일감 지원’을 편법 증여로 본다면 현대차의 기존 사업 방식은 상당 폭 수정돼야 한다. 합병 과정에서 주당 가치를 부풀린 정황이 포착돼도 증여세는 물론 법인세 탈루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번 세무조사가 완전히 ‘새로운 혐의’라기보다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예상보다 현대차그룹에 미치는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정몽구 회장이나 정의선 사장에 대한 국세청의 추가 고발과 관련해서도 이미 정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어 확률이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 현대차의 지난 1년

지난해 ‘비자금 사건’으로 시작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시련은 23일 글로비스 등 3개 계열사에 대한 국세청의 전격 세무조사까지 겹치면서 한동안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사건은 작년 4월 28일 정몽구 회장이 구속되면서 최악의 국면을 맞았다. 여기에 노조 파업, 시무식 폭력사태 등이 겹치면서 국민의 신뢰는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현대차그룹은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거액의 사회 환원을 선언한 데 이어 조직 개편, 사회봉사 확대 등 투명성 제고 노력을 해 왔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현대차는 9일 주주총회에서 투명경영과 사회봉사 강화를 위해 8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를 설치키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9일에는 노사관계 혁신을 위해 외부 전문가와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노사 전문위원회도 구성했다.

지난해 9월에는 계열사 자율경영에 걸림돌로 지적돼 온 기획총괄본부를 기획조정실로 축소 개편하면서 박정인 현대모비스 고문을 기획총괄담당 부회장으로 복귀시켰다.

또 지난해 4월에는 1차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상생(相生)협력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지난 한 해 협력업체에 2조3000억 원을 지원했다. 2010년까지 13조60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집행유예를 기대했던 정 회장이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데다 계열사 세무조사까지 겹치면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4월 19일 했던 정 회장 부자(父子)의 글로비스 주식 헌납 등 1조 원의 사회 환원 약속도 큰 고민거리다.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주식 평가액은 당시 9000억 원에 이르렀으나 주가 하락으로 현재 5800억 원에 그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 후 구체적인 환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19년간 계속돼 온 노조의 파업이 올해도 재연될지도 주목된다. 현대차 노사의 임금단체협상은 4월부터 시작된다.

결국 현대차그룹의 시련은 정 회장의 항소심 판결과 그에 이은 재산 사회 환원, 원만한 노사 협상, 세무조사 등을 마쳐야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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